180730 Napoli Rome
늦은 시간 나폴리에 들어와서, 가족 모두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아니면 에어컨 때문에 깊이 잠을 잤는지, 9시가 다 되어서 가족 모두 잠에서 깼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침 식사를 위해 호텔 앞 카페로 향했다.
우리가 선택한 호텔 이름은 StarHotels Terminus이다. 중앙역 바로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고, 어제 이야기했듯 규모도 꽤 크다. 현대식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실내장식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에어컨 성능이 매우 훌륭한, 가성비 좋은 호텔이다. 조식을 먹진 못했지만, 분명 훌륭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우리처럼 조식을 못 먹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식당(카페)이 호텔 앞에 줄지어 있었다.
호텔 앞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 중엔 가능하면 야외 테이블로 자리를 잡는다. 왠지 실내에서는 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워도 속 편하게 식사하는 편이 낫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빵을 조금 주문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날씨는 비록 아침이었지만 벌써 더워지고 있었다. 이럴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격.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한 후, 약간의 얼음을 달라고 요청했다. 아쉬우나마 이렇게라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갓 구운 빵, 이탈리아 특유의 커피 향. 비록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나와 아내는 오랜만에 이탈리아에 온 느낌을 한껏 누렸다. 한 시간 가까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출발했다. 감사하게도 호텔에서 늦은 체크아웃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지 않고 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폴리로 오면서 반나절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로마로 가는 기차는 오후 5시. 우리에게 나폴리에서 주어진 시간은 대략 7시간 정도이다. 고민 끝에 그래도 나폴리에 왔으니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남부 투어는 못 하더라도 힘들게 들고 온 아이들 수영복이라도 입혀봐야지. 우리는 구글 지도를 켰고, Mappatella Beach라는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검색하니 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로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뮌스터와 파리도 꽤 더운 날씨였지만, 역시 이탈리아 남부 도시에 비할 바는 아닌가 보다. 생각 이상으로 더웠다. 걸어가는 내내 아이들은 음료수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더군다나 힘들게 걸어서 도착한 버스 정류장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오면, 가장 먼저 유모차가 굉장히 거슬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거대한 쌍둥이 유모차라니! 힘겹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버스 대부분이 만원이다.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과연 바닷가에 갈 수 있을까?
드디어 우리 버스가 도착했다. 역시나 만원. 점점 짜증이 몰려왔다. 현지 주민분들이 우리에게 이탈리아어로 뭐라 말씀하시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를 핀잔 주는 것인지. 점점 더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해서 바닷가에 가야 하는지 고민되기 시작한다. 잠시 후 해변으로 향하는 다른 버스가 도착했고, 현지인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버스에 탈 수 있었다. 15~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향하는 길도 꾀 고역이었다. 버스 안에 사람은 많았고, 더위 때문에 아이들 상태가 영 좋진 않았다. 정말, 정말 힘들게 바다에 도착했다.
모래사장에 도착하니 12시. 아내는 바로 아이들 수영복을 갈아입혔다. 나는 유모차와 짐을 챙겨 뒤를 따라갔다. 아마도, 나는 바닷가에 오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나 보다. 바다를 보는 것은 무척 좋아하지만, 들어가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바다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지, 더위와 버스 타는 과정에서 느낀 짜증 때문인지, 나는 완전히 구경꾼으로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저 먼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만 몇 장 남겼다.
덥고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아내가 존경스럽다. 그래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아졌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아이들과 싸우기만 했겠지. 아내 덕분에 아이들이 노는 동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사이에 점심시간이 지나버렸다. 기차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우리는 적당히 놀이를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했다.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좋진 않았지만, 호텔에 들어가 다시 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면 나폴리 일정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우선 인근에 점심을 먹을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물론 더 걸어가면 가능했겠지만, 우리에겐 이 더위 속에 유모차를 끌고 걸어갈 에너지도 시간도 없었다. 결국, 바로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하고, 중앙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계획을 세웠다. 바로 구글 지도를 켜 중앙역으로 가는 교통편을 검색한 후,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마치 파리 공항에서 351번 버스를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 구글 지도에는 버스가 곧 도착할 것처럼 안내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버스가 지나갈 만한 길이 아니었다. 40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택시를 잡았다. 어차피 이럴 거였으면 진작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올걸. 아니, 그때라도 택시가 마침 잡혀서 다행이다. 뭐, 비용이 문제지, 덕분에 편하게 호텔로 복귀할 수 있었다. 또 한 번 여행 중 비용과 편함과의 상관관계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져서 아이들 낮잠과 점심이 걱정이었다. 우리는 호텔에 들어와 아이들을 먼저 씻기고, 우리도 씻은 후 떠날 채비를 했다. 늦은 체크아웃을 제공해준 호텔에 정말 고마운 순간이다.
이제 우리의 계획은 중앙역에 가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재우는 일. 우리는 중앙역 중앙에 있는 식당(푸드코트)에서 햄버거(버거킹)와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부지런히 음식을 먹고,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나폴리 중앙역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역 안이 약간 더웠기 때문에 그나마 시원한 서점 안을 돌아다녔는데,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엔 또 넓지 않은 공간이라 애를 먹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려고 하지 않아 한참을 돌고 돌아야 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들 재우는 데에 실패. 어쩔 수 없이 기차에서 재우기로 했다. 어쨌든 무사히 기차에 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언젠가 이탈리아 고속철도를 타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열차는 신형이라 그런지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게다가 비행기처럼 기내식까지 제공된다니. 아이들도 비행기를 탄 것처럼 무척이나 좋아했다. 제공된 과자와 음료를 간식으로 먹고, 아이들을 재웠다. 도시 이동은 언제나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쾌적한 환경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렇게 2시간 후 우리는 무사히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4년 만인가. 테르미니는 여전히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로 붐비고, 퍽 정신없는 공간이었다. 로마에도 참 많은 추억이 남아 있다. 대학 시절 형과 처음 방문했던 로마의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노오란 불빛 야경, 바티칸 투어에서 감상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느낌 장엄함. 숙소였던 테르미니역 부근의 한인 민박에서 먹었던 훌륭한 한식까지. 포인트 하나하나 어린 나이의 내게 꽤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줬던 기억이 있다.
4년 전 아내와의 방문은 어려움과 즐거움이 공존한 여행이었다. 파리에서 로마로 오는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고생했던 기억.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쉬지 않고 걸었던 기억도 있다. 또, 아내 그리고 친구와 남부 투어를 가기로 계획했었는데, 파리에서 차를 빌려 몽생미셸 수도원에 다녀온 후 운전이 너무 힘들어 남부 투어를 포기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5월 로마의 날씨는 너무 좋았다. 그저 그 자체로 하나의 유물이며 박물관인 도시 거리를, 그 좋은 봄날에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된다고 느꼈었다. 당시 로마가 3개월가량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마지막 도시였는데, 마지막 날 밤 두 사람 모두 언제 어떻게 잠든지도 모르게 지칠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로마에 방문하는 이에게 꼭 두 다리를 믿고 로마 거리를 걸어보라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숙소가 역에서 거리가 조금 있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게다가 파리에서 나폴리를 거쳐 로마에 오는 길이 조금 힘겨웠다. 아이들과 함께였고, 짐이 너무 많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로마에서 지하철은 첫 경험이다. 그동안 로마에서는 늘 걸어만 다녀서, 지하철 노선표 자체도 생소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테르미니에서 지하철 탑승, 피라미데(Piramide)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아파트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로마에서도 취사 가능한 아파트를 예약했다. 예약할 당시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에어컨도 있고 세탁도 가능하다. 테르미니역에서 조금 멀어서 그렇지, 인근에 작은 까르푸 마트도 있고, 조용한 동네여서 위치 자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더욱이 아파트 실내 공간이 매우 넓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호스트까지. 숙소 이용과 관련한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에어컨을 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숙소가 아주 맘에 든다. 숙소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다음에 또 로마에 오면 이 숙소를 오자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만족스러운 집이었다. 아이들도 넓은 집에서 마음 놓고 뛰놀 수 있어 좋았다. 나도 아이들도 조금은 흥분한 상태였을까. 안고 있던 온이를 실수로 떨어트려 온이 이마에 상처가 낸 에피소드만 제외하면 아주 완벽한 저녁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세현이가 꼭 오고 싶어 했던, 로마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