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국수를 닮은 친구
오랜 제 친구는 메밀국수 같아요.
이 친구를 어떤 음식에 비유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니 바로 떠오른 음식이었습니다.
저는 메밀국수를 좋아해요
메밀국수는 사실 별 맛이 없습니다.
저에게 맛 자체만 구별을 하라고 하면 소면인지 메밀국수인지 구분을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미각이 아주 섬세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메밀국수는 특유의 식감이 있습니다. 씹을 때 아주 부드럽게 뭉개지는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메밀국수는 소화가 잘 됩니다. 속이 불편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메밀국수를 가끔 찾습니다. 아주 특별한 매력은 없을지라도 작은 매력들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메밀국수를 닮은 이 친구는 저에게 그러한 친구입니다. 눈에 띄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친구는 아니지만, 작은 매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메밀국수 친구는 본인의 매력을 잘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메밀국수 친구의 매력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메밀이는 정말 담백해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허세도 없고 허영심도 없어요. 메밀이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거들먹거리며 남을 깎아내리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치기 어린 시절에, 저는 무척 어리석었고 허세가 가득했습니다. 일탈을 동경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메밀이만은 늘 그 자리였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어리석게 행동하는 제 모습을 보며 묵묵히 기다려주던 친구입니다.
날뛰는 저를 보고도 메밀이는 핀잔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메밀이는 저에게
그 시기는 금방 지날 거야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메밀이는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저를 그저 묵묵히 바라봅니다. 늘 저를 기다려주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저는 메밀국수 친구 옆에서 참 편안합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에너지 소모가 심한 편입니다. 그 누가 되었든 간에 그렇습니다.
직장에서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는 가족을 만날 때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귀가할 때쯤이 되면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만나서는 잘 지내지만, 만나기 전에는 너무 많은 긴장을 하고
만나고 나서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립니다.
물론 메밀이를 만나기 전에도 긴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때의 긴장이란, 그 사람에 대한 긴장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만나는 그 사실 자체에 대한 긴장입니다.
하지만 메밀이에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메밀이와 만나고 난 이후의 제 에너지 소모량이 비교적 적다는 것입니다.
마치 메밀국수를 많이 먹고 나서도 소화를 잘 시키는 제 위 처럼 말이에요.
메밀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고 흥분되지는 않습니다만,
같이 있으면 부대끼지 않습니다. 만남을 끝낸 뒤에 소화가 아주 잘됩니다. 오히려 개운하기까지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메밀이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메밀이의 매력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메밀이와는 오랜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햇수로 20년이 넘었어요.
메밀이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늘 그렇게 묵묵히 메밀이로서 있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메밀이는, 변화에 힘든 저에게 더 맞는 친구입니다.
메밀이도 제 존재가 힘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메밀이가 있어서 살아가는데 꽤나 힘이 됩니다.
제가 또 휘청거리거나 궤도를 이탈한 짓을 해도 메밀이는 묵묵히 봐줄 것만 같거든요.
부디, 메밀이가 본인의 이 매력들을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