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 관찰 일기] 직장에서 관찰한 인물

복어를 닮은 선배

by 평다

어떤 사람을 '안다'라고 표현을 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그 사람을 관찰해야 할까요?


하루? 한 달? 1년? 10년?


1년을 옆에 두고 관찰한 사람을 내가 정말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30년을 함께 산 부모님을 제가 정말 '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정확히 안다고 말하기 힘이 듭니다.

저의 이런 말에 부모님은 어처구니없어하셨지만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 그 자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부모님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저의 오랜 습관 중 하나는 의식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고 좋아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던 소소한 경험들로부터 얻은 교훈이기도 하고


싫어하고 혐오했던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좋은 점을 발견해서 머쓱해했던 무수한 사례들로부터 얻은 경험치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저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모습도, 구린 모습도, 짠한 모습도, 경멸스러운 모습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저의 좋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저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저의 구린 모습을 보고 저를 아주 나쁘게 평가하며 수군 거리기도 합니다.


그 모든 모습이 다 저이기에, 항변을 할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만, 조금 아쉽기는 해요.


제가 어떤 사람을 판단한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진 몇 개의 특징만을 보고 섣부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관찰을 하려 합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새로운 특징을 하나씩 수집해가는 것은 썩 재미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어떠한 사람을 아냐고 물어보면

저는 판단을 유보해요. 그리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관찰한 후 이야기합니다. 제가 관찰해서 모은 그의 특징을 열거하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누군가를 보고 섣부른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최근에는 복어 선배에게 그랬고요.






복어를 닮은 선배가 있습니다.


생김새가 무척 닮았어요.


선배에게 복어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꺼려져서 정말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복어만 머릿속에 가득 찼어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선배는 아무래도 복어입니다.


큰 키에 동그란 몸, 새하얀 피부까지.


머리칼은 심한 곱슬이며 커다란 안경이 어울리는 얼굴입니다.


목소리는 어찌나 고음인지, 예전에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속 복어 캐릭터인 퐁퐁 부인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 복어 선배, 성격이 엄청납니다.



처음 이 복어 선배를 보았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거든요.


아주 높은 고음의 짜증이 잔뜩 담긴 목소리와 억양으로 계속해서요.


복어 선배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는데, 바로 상대의 말과 자신의 말을 동시에 뱉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끊는 것을 모자라, 상대방의 말 위에 본인의 말을 겹쳐서 해버리는


아주 흉하고 신기한 버릇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복어 선배와 상대가 둘 다 잔뜩 약이 올랐을 때는 시끄러운 돌림노래를 듣는 것만 같았습니다.


두 목소리가 한데 섞여 마구 떠들어대는 모습은 참 진귀한 장면이기도 하며 진절머리가 나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대화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의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던가요?


저 선배가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본인의 주장을 트럭의 확성기처럼 반복해서 읊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어 선배가 목소리를 높이며 본인의 주장을 쏘아댈 때는 상대에게 복어 선배의 생각을 마구 쑤셔 넣는 것 같습니다.


무척 무서웠어요.


저는 자신의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꾸겨 넣는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저는 복어 선배를 잘 모르지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이랑은 일하고 싶지 않다, 저 사람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말도 섞고 싶지 않다.


라고요.


물론 회사 내에서 평판도 엉망이었습니다.


일은 곧잘 하지만 고집이 세고 사람 말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라며 다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올해 같은 부서에서 복어 선배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어 선배에게 일을 많이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위축이 되었습니다.


제가 실수 하나라도 하면 얼마나 성질을 내며 무안을 줄까, 출근하기가 싫어졌어요.


그렇게 복어 선배와 일한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저에게 복어 선배는 어떤 사람이냐고요?


일을 참 잘하고, 성격이 고약하지만 약간 귀여운 사람 같습니다.





제가 본 복어 선배는 많은 안 좋은 특징들이 있어요.


앞에서 말했듯이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쑤셔 넣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고집이 무척 세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쉽게 묵살해버립니다. 정말 독불장군이 따로 없어요.


그런데 복어 선배는 귀여운 구석들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사무실에서 마실 커피 캡슐을 마구 산 적이 있습니다. 구매한 캡슐을 한데 모아 저의 서랍에 넣다가 문득 사무실에 저와 복어 선배만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의미 없이, 의도 없이 복어 선배에게 커피 캡슐을 건넸습니다


선배~처음 사본 캡슐인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복어 선배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뒤돌아 제자리로 오려는데, 복어 선배가 저를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때 처음 복어 선배의 얼굴을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


복어 선배는 기분이 참 좋았는지 싱글벙글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아주 동그랗고 커다란 흰 얼굴에 미소가 올라오니 귀여웠습니다.


그러더니 몇 분뒤 복어 선배가 제 자리로 왔습니다. 제가 올려다보니 복어 선배가 아직도 그 귀여운 얼굴을 하곤 커피 캡슐 두 개를 내밀었어요.


평다 씨, 제가 먹어본 캡슐 중에 이게 참 맛있더라고요. 한 번 먹어봐요.



누군가의 모습을 천천히 깊게 들여다보면 의외의 귀여운 구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어 선배의 웃는 얼굴은 꽤 귀엽습니다.


그 뒤로 왠지 모르게 복어 선배는 제 앞에서 많이 웃었어요.


왜 그럴까? 커피 캡슐 때문일까? 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일까?


저는 복어 선배의 미소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복어 선배를 관찰했어요.




복어 선배는 이 회사에서 누구보다도 오래 몸 담은 사람, 베테랑입니다.


만능 매뉴얼 같은 사람이에요. 무언가 물어보면 척척, 답변이 되돌아옵니다. 물론 친절하진 않지만요.


며칠 동안 복어 선배를 관찰한 결과, 복어 선배는 업무 이야기를 제외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복어가 자신의 몸을 부풀리고 가시를 삐죽삐죽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복어 선배는 늘 자신의 노트북에 화가 난 자신의 얼굴을 묻어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얼굴에 귀여운 미소가 있음을 알아차렸으니, 조금 더 복어 선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생각이 날 때마다 복어 선배에게 무언가를 했습니다.


같은 부서에 있는 친구에게 초콜릿을 줄 때 복어 선배에게도 몰래 건네 보거나,


화난 표정의 복어 선배에게 아침 인사를 밝게 건네 보거나,


복어 선배가 허리가 아프다며 으그그 할 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복어 선배와 눈을 맞추거나 하는 일이요.



언젠가는 복어 선배가 파일을 정리하다가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아이코, 손을 또 베어버렸어!



호들갑 떠는 복어 선배가 신기했습니다. 서랍에서 일회용 밴드를 꺼내 건네었어요.


복어 선배의 손은 별로 다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손이 아프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본인의 손가락을 꾹 눌러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종이로 베인 상처가 원래 더 성가시고 아프잖아요. 얼른 밴드 붙이셔요.



복어 선배는 기분 좋게 제가 건넨 일회용 밴드를 받아 들고 다시 싱글벙글 웃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탕비실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걱정해주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어요.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모습이 기분이 좋은 것이었겠죠.


복어 선배는 제가 썩 맘에 들었나 봅니다.


항상 고음의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던 복어 선배이지만,


제 앞에서는 줄곧 미소를 보여주며 자신의 실수를 속삭이던 날도 있었습니다.


내가 좀 칠칠맞을 때도 있어, 그래도 평다 씨 일은 잘 챙겨볼게.



저는 후후 하고 웃었습니다.




이제는 복어 선배가 제 자리를 지나칠 때 늘 저의 행동과 책상을 빠르게 훑어봅니다.


그리곤 참견을 해요.


이건 이렇게 하면 편해, 내가 도와줄까?


제가 무언가가 필요해 보이면 동그란 몸을 아주 빠르게 움직여 본인 것을 저에게 가져다줍니다.


일은 다 아이템빨이야~이거 한번 써봐 평다씨 줄게.



저는 복어 선배를 떠올릴 때면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이나 행동으로만 판단할 것은 아니구나.라고요.


물론 사람의 겉모습과 그 사람의 언행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특히나 사회생활에서는 더더욱이요.


그래서 저는 고약한 버릇을 가진 성격이 모난 복어 선배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복어 선배를 보며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저에게 어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래, 그런 면모도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려 애를 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저에 대한 별로인 구석을 찾았더라도


제가 괜찮은 구석 역시 가지고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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