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버터 같은 오빠
처음 앙버터라는 이름을 들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친구들끼리 빵집에 간 날이었습니다. 창고처럼 휑하고 커다란 공간을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빵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분주히 빵과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에 섞여 친구들과 함께 빵을 골라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빵을 잘 먹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에 빵을 먹으면 돼지가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평생 저를 쫓아다니거든요. 물론 지금 제가 날씬한 체형은 아닙니다만.
지금도 빵을 먹으면 돼지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 잘 먹지 않습니다. 그래도 치즈케이크는 참 좋아해요.
친구들이 눈을 반짝이며 어떤 빵 앞에서 소란을 떨었습니다. 팻말에는 작게 '앙버터'라고 적혀 있었고 빵은 꽤나 많이 소진되어있는 상태였어요. 새삼 주위 사람들의 쟁반을 둘러보니 대부분 그 앙버터라는 빵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한 눈에도 인기가 많은 빵인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기에 그 빵을 들어 쟁반에 얹었습니다.
생김새는 빵 사이에 무언가를 끼워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뭐길래 호들갑일까? 하고 궁금했어요.
왜 이름이 앙버터야? 이 빵 집에서 귀엽게 지은 이름이야? 하고 물으니 친구들이 풉 웃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냥 앙버터야~라는 친구의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앙버터는 팥앙금과 버터를 함께 곁들여 먹는 빵입니다. 그래서 팥앙금의 앙과 버터를 합친 이름입니다.
특이한 것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두툼하게 잘린 버터를 팥 앙금과 함께 빵 위에 올려 먹는다는 것입니다.
두꺼운 버터를 보았을 때는 너무나 놀라, 이걸 입에 넣어도 될까? 꽤나 망설였습니다. 그 몸에 안 좋다는 버터를 덩어리째 먹는다니요. 빵에 바를 때도 수없이 고민하다 아주 조금 녹여 바르는 그 버터인데..
콜레스테롤, 포화지방의 유해한 점을 여기저기에서 너무나도 떠들어대는데 두꺼운 버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얹어 먹는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있으니 놀란 기색을 감추어두고 한 입 먹어보았어요.
생각보다 느끼한 맛보다는 버터와 앙금의 조화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두꺼운 두께의 버터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지만요.
제가 느낀 앙버터라는 빵은 조금 세련된 빵 같았습니다. 소보로, 팥빵, 꽈배기가 동네 아무 곳에서나 편히 찾아 먹는 수더분한 빵이라면 앙버터는 유행을 부지런히 좇는 세련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먹는 빵 같아요.
이름도 앙버터라니, 뭔가 새롭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형태이지만요.
저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 편입니다.
오빠는 저에게 앙버터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세련된 사람이자 꽤나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며 이해되지 않는 모습들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오빠는 늘 스타였습니다. 얼굴이 잘생겨서 어릴 때는 동네에 팬클럽이 있었어요. 잘생긴 외모에 성격까지 귀여우니 너 나할 것 없이 좋아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오빠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던 저에게 대문 밖의 언니들을 만나고 오라고 했어요.
저는 어쩐지 중학생 언니들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는데, 오빠가 본인 대신 나가서 언니들을 만나고 오면 초콜릿을 준다고 했습니다.
훗 날 알았지만 그날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을 하는 날 말이에요.
오빠는 그 언니들이 집 앞에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선물을 받긴 부끄러웠었나 봅니다.
오빤 잘생겼고 인기도 많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아이였어요. 그마저도 언니들에게는 매력이었나 봅니다.
제가 쭈뼛거리며 대문 밖으로 나가자 언니들 세 명이 저를 쳐다보았어요.
생김새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제 눈에 그 언니들은 엄청나게 성숙하고 큰 어른들 같았어요.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너 앙버터 동생이니? 라며 언니들이 흥미로운 듯이 저에게 물어보았어요. 제가 끄덕거리자 그래~귀엽네 라며 꺄르륵 웃었습니다.
오빠는 없니?라는 말에 제가 도리질을 하자, 언니들은 아쉬운 듯이 저를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분홍색의 커다란 상자를 저에게 주었어요.
꼭, 오빠에게 전달해줘야 해!라고 무섭게 당부를 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분홍색 상자를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상자 뚜껑을 열어보니 예쁘게 접은 종이 장미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리고 장미 안에는 동그란 축구공 모양의 초콜릿이 들어있었고요.
저는 신이 나서 장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유치원생 눈에 중학생 언니의 솜씨가 얼마나 멋져 보였었던지요.
그때 오빠가 방문을 열고 다다다 뛰어오더니 제 손에 있던 분홍색 상자를 낚아챘습니다.
초콜릿 준다며!!라고 소리치자 오빠는 안에 있던 축구공 모양의 초콜릿 하나만 저에게 던져주고는 방으로 사라졌어요.
야속한 마음에 이 씨!!!라고 나름의 반항을 한 번 하고, 초콜릿을 소중히 손에 쥐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오빠는 각종 이벤트가 있는 날마다 초콜릿이며 과자며, 인형이며 각종 선물을 집에 바리바리 싸들고 왔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 저 역시 그렇게 많은 선물들을 받을 줄 알았어요. 입학하고 곧 아닌 것을 알았지만요.
오빠는 친척들 사이에서도 스타였습니다.
오빠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고 할머니 집에 갔었어요.
남자가 노란색 머리를 했다며 남자 어른들이 무척이나 놀랐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넌 우리 집안에서 난 놈이다!
하며 아니꼬워하던 작은 아빠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오빠는 머쓱해하는 것 같았지만 저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어요.
맞아요 우리 오빤 난 놈이에요!
라고 속으로 으스댔습니다.
특별한 오빠를 두고 있는 동생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오빠는 지금도 그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세련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행에 늘 민감하고 본인만의 개성도 뚜렷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쇼핑을 할 때면 오빠의 조언이 어쩐지 도무지 어길 수 없는 바이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 없던 스웨터를 입었을 때도, 오빠가 그 스웨터 괜찮네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감에 어깨가 펴질 정도이니까요.
물론 오빠가 저의 옷 스타일을 지적하며 비웃는 모습은 짜증 나지 만요.
빵집에 가면 저도 모르게 앙버터 빵을 눈으로 찾습니다. 그리고 앙버터 빵을 발견하면 무척 반가워요.
이 빵집은 이 세련된 빵을 가져다 놓았으니, 유행에 민감한 빵집인가 봐. 메뉴 개발에 소홀히 하지 않는가 보구나! 라며 혼자 멋대로 판단합니다.
물론 그 앙버터 빵을 사 먹지는 않지만요.
저는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편입니다. 나만의 규칙 또는 지침이 있는 것을 선호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오빠라는 지침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가끔은 짜증이 나고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오빠라는 존재는 제 인생에 참 중요한 지침 중 하나입니다.
이런 형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아주 커다란 행운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