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기록을 찾아보니 2008년), 우연한 기회에 「수제 창작 그림책 만들기」 서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하드커버 책을 제본하고, 와트만지에 그럴싸하게 그림과 글을 담아 1년에 한 번 전시회도 열었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책’이었지요.
아직 젊고 씩씩했던 때라서였을까요? 왜 그렇게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지요. 그림, 글, 음악, 만들기, 가드닝, 요리, 교제 등등. 몸과 시간이 열정을 따라가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인연을 맺게 된 그림책 만들기는 여러 가지 욕구를 한꺼번에 충족시켜주었고, 나름의 창작열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아마추어라 더 소중한 나만의 그림책들을 다시 꺼내 보며, 새로운 창작열에 다시 불을 지펴보고 싶네요.
이 그림책은 제 첫 작업물(?)입니다. 커버의 필름이 우굴쭈굴한 것까지 영낙없는 초보 티가 나지요? 유성펜을 써서 세월과 함께 글씨가 번진 것까지도.
이 그림책을 YR과 YJ에게
사랑해!
오늘은 숫자들의 축제.
온 세상의 숫자들이 모였어요.
즐거운 축제가 한창일 때, 갑자기 모두의 앞에 나선 것은 '1'이었어요.
나는 숫자들의 왕이야!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어.
모두들 나처럼 1등이 되고 싶어 하지.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진정한 넘버 1(원)이야.
내가 더 잘났어!
손가락은 10개.
모두 맨 처음 손가락으로
10까지의 숫자를 외우지.
10까지 알면, 그다음 숫자는 간단하다고.
호, 호, 호, 뭐라는 거야?
나야말로 모두가 부러워하지.
시험에서 100점 맞으면
아빠, 엄마는 무척 기뻐하면서 뭐든지 해주잖아.
나야말로 제일 잘났지, 암!
아~아~
너희 모두 소원 없니?
내가 이루어줄게.
천마리 학을 접어 보렴.
나, 1000(천)에는 굉장한 파워가 있다고.
헤헤,
세상에서 제일 쓸모 있는 건 역시 돈!
나 같은 10000(만) 원 짜리가 아주 많이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어.
너희는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니?
내기 만들어 줄게.
모두가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있을 때,
8명의 부하를 이끌고
100000000(1억)이 나타났어요.
모두가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그런데 그 뒤에도, 또 그 뒤에도
큰 숫자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어요.
"이래서는 숫자가 끝이 없네~"라고 모두가 소리쳤어요.
그때, '0(제로) 마마'가 나타났어요.
"너희 모두 잘났지. 모두 내가 낳은 아이들인걸. 엄마한테 오렴. 그럼 끝난단다"
숫자들은 다툼을 멈추고 0(제로) 마마한테 달려갔어요.
0(제로) 마마는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하게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모두는 다시, 즐거운 파티를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참여한 그림책이라 (첫 책이라는 점도 있지만), 무척 아끼는 책입니다.
2살 난 아들이 손도장을 찍어주었고, 9살 난 딸이 종이학을 정성껏 접어주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0(제로) 마마를 참 좋아했어요.
제가 그림책을 만드는 것도 늘 응원해주었고, 새 책이 나오길 무척 기대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훌쩍 커서 얼굴 보기도 힘드네요.
손 놓은지 한참 되었는데도 새 그림책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주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힘을 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