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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Feb 28. 2021

우리 안의 밝은 방

당신의 방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있나요?

엄마는 첫돌이 채 되지 않은 나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며 아직도 그 시절을 아쉬워하신다. 이른 아침 유모차에 갓난쟁이를 태우고서 우유와 신문을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엄마의 이십 대, 오후 내내 학습지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정작 당신의 아이는 남의 손에 맡겨져야 했음에 얼마나 마음이 쓰였을까. 삼십 년이 지나 나 또한 엄마가 되어보니 조금은 그 심정이 헤아려진다. 어린이집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나는 엄마가 데리러 올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면 자지러질 듯 울었다고 했다. 시계도 볼 줄 모르던 아기에게도 직감이란 게 있었던 걸까. 해 질 무렵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논두렁을 지날 때면,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더라는 엄마 기억 속의 나. 고된 하루 끝에 사랑하는 아이와 체온을 나누며 집으로 향하는 길의 안도와 기쁨을 함께 나눈 것이겠지. 엄마는 그때의 주홍빛 기억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딸 생각이 나 휴대전화에 익숙한 번호를 누르곤 하신다.

 여러 육아 선배들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내 육아방식을 두고 입을 뗄 때마다 엄마는 그저 ‘우리 딸 정말 잘하고 있다. 김서방이랑 둘이서 정말 잘하고 있어.’ 라며 무한한 지지를 건네주신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달라고 해도 엄마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해내는 중인 우리 가족. 출산 이후 지금까지, 매번 복직과 창업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당장에 굶어 죽을 상황이 아니면 세 살까지는 네가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니? 지금 하는 일에 큰 욕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아이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건 어때?’하며 늘 한결같은 말로 길을 안내하던 엄마. 아마도 당신이 이미 지나온 길이기에, 같은 길을 만나지 않길 바라는 진심임을 안다.

 나 또한 내 아이에게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형성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하던 애착의 문제며, 여느 가정과 비슷하지 않아 비교되고 화두에 오르곤 하던 내 유년의 상처들, 그로부터 비롯된 성인 이후의 고민들까지.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을까. 그저 밝은 방에 화사한 꽃들만 심어주고 싶은 마음, 그게 어떤 마음인지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부쩍 잦아진 우리의 부부싸움과 횟수를 더할수록 조금씩 난폭해지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혹시라도 어릴 적 마주했던 부모의 부정적인 모습을 닮아가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행여 아이가 볼세라 방문을 닫아버려도, 이미 높아진 목소리는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말소리를 누를 때가 되어야만 멈추고 만다. 한바탕 바람이 지나고 나면 서로 밀려드는 후회에 아이를 붙잡고 미안하다, 미안해 말하지만 이미 아이는 다 흡수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처받은 아이가 상처받은 어른이 되어서 상처 주며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빠르게 사과하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고 싶다. 요즘 '운디드 힐러'라는 말을 종종 생각한다. 운디드 힐러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뜻으로 상처를 극복해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부모야말로 이런 운디드 힐러가 되어야 한다. 내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를 답습하지 않는 사람. 아이가 면접을 통해 부모를 직접 선택해 가정을 이루는 세계를 그린 <페인트>의 작가 이희영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중에서 검은색이 더 많이 섞인 잿빛 회색. 나의 아이에게는 이런 색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꾸준히 말할 수밖에'. 나 또한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잿빛 회색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는 파스텔에 가까운 시절을 주고 싶다. 어려울 것을 알지만 포기한다면 이 아이도 잿빛을 가지게 되리라. 물려주는 것이 외모나 자본뿐이 아니어서 상처도 대물림되기 쉽다. 실수를 인정하고 교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내가 싫어했던 어른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고,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초대했으니 가능하면 다정하게 좋은 것만 주고 싶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꾸준히 말해주면서.
[popopo magazine no.2 ,정문정]

 몇 안 남은 내 유년의 조각 중, 그래도 밝음을 떠올려보자면  여섯 살 무렵 산골짜기 외할머니 집, 그리고 바닷가 마을의 큰 이모네 집. 여느 모임에서든 어린 시절 혹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이야기해 보라면, 그 시절만 떠올랐다. 아이가 아이로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던 때,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처럼 철 없이 굴 수 있던 때였으니 말이다. 나의 유년에는 몇 없는 밝은 방, 그에 비해 눈칫밥을 먹어야 할 때나 어두운 색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조각은 참 많이도 남아있다. 불러내 다독이고,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묵은 때.

그 누가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겠나. 어찌 보면 이른 나이부터 독립을 고집했던 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지금, 여기가 가장 밝다. 적어도 스스로 어두운 색을 골라잡는 일은 드물어졌으니 말이다. 유년시절의 나에게는 얼마 없는 장면이지만,  내 아이는 다시 돌아가 포근하게 안길 수 있는 밝음이 많았으면 좋겠다. 파스텔 톤으로 채워진 방이 많아 무심코 문을 열더라도 잠시나마 쉬었다 나올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부터 활짝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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