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뒤를 돌아보니 초등학교 자녀를 둔 40대 가장이 되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 시간에 와서 숨을 쉬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터로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와 같은 마음인데. 눈을 다시 떠보니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어 있었고 아빠가 되어 있는 나를 본다. 아직도 엄마 품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 내 마음을 지켜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모르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삶의 현장으로 나간다.
사람들의 한마디 말과 행동에 무슨 큰 죄를 진 사람처럼 눈치를 볼뿐. 다른 사람의 기분과 마음만 먼저 헤아리고자 내 마음은 항상 뒷전이다.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가리켜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참아야 했다.
당신은 어떤가?
최근에 내적 치유라는 심리 교육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 통해 일상을 살면서 해결되지 않았던 어려움들이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원 가정에 부모님의 삶 속에서 보고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부모를 비난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으랴. 어떤 이는 불효 막급하고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또한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가없었다.
어릴 적 엄마는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고, 아버지는 내 기억에 존재감이 없는 분이셨다. 엄마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가정 형편을 먼저 생각했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는 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울고 싶어도 엄마의 눈치가 보여 맘껏 울지 못했다.
엄마에게 항상 착한 아들이었고, 삼 형제 중 막내였지만 엄마의 힘든 마음을 들어줘야 하는 자식이었다. 형들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일터로 나가시면 언제나 혼자였다. 학교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서 밥을 챙겨 먹고, 그렇게 사춘기도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누구나 이런 추억들은 하나둘씩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괜한 푸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상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존재라니.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었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사춘기가 없이 착한 아들로 산 나 자신이 엄마와 분리가 되지 못하고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 삶이 결혼 후, 가정생활에도 영향을 미쳤고 계속 효자 아들로 살았다. 내 아내는 착한 아들 노릇을 하는 나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했다.
학교, 직장, 사회생활에서 항상 양보하고 남의 맘을 먼저 챙겼다. 좋게 말하면 배려가 있고 매너가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았다. 엄마에게 착한 아들이듯 사회에서도 착한 아들처럼.
화가 나는데, 화를 내지 못하고 억눌러야 하는 그런 성인 아이로 살았던 것이다.
내적 치유를 하는 동안 엄마의 대역인 상대에게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냐고 이게 뭐냐고” 절규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난 큰 아들도 아닌데, 왜 나만!”
그렇게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짧게나마 표현했다. 몸은 성인이지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던 착한 아들로 30년 이상 산 것이다.
심리 상담 후, 국내에 개봉 중인 조커라는 외국 영화를 보게 되었다. 상담 직후 보는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를 관람하는 두 시간 동안 영화의 주인공으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영화 주인공 ‘아서’는 엄마가 웃는 게 예쁘다고 했기 때문에 항상 웃고 다니는 착한 아들이다.
특별한 이유를 모른 채 마음의 병을 갖고 사는 아이.
영화 '조커'의 주요 장면들
세상 그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공감하지 않는다. 모두 ‘아서’ 앞에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 뿐. 그를 상담하던 심리 치료 상담사 역시 ‘아서’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멸시와 외로움으로 ‘아서’는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출생의 비밀과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낀 후, 자신을 멸시하던 사람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그의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몸은 성인이지만,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의 멸시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 ‘아서’.
마지막 장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나를 알아 달라고 '아서'는 광대 춤을 춘다. 주인공 '아서'가 춤을 출 때 나 역시 춤을 추는 ‘아서’가 되어 있는 듯했다.
내 마음보다 항상 타인의 마음을 이해만 하려고 애쓰던 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봐 달라고 춤을 추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영화에 몰입되어 나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주인공 '아서'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너 혼자 너무 잘 컸어. 그동안 애쓰고 수고했어. 착하게 사느라 힘들었지?
이 영화가 아동 폭력에 초점을 맞추어 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성인 아이로 살고 있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해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었다.
당신은 어떤 아이 인가?
행복을 찾고 있지만, 공허한 마음만 든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성인 아이 일 수도 있다.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엄마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성인 아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 배우자 등 그 누구의 진한 공감과 위로도 못 받고 외로움 속에 어쩌다 아빠, 엄마가 되어 살고 있는 성인 아이.
매일 이해도 해결도 되지 않는 채, 화와 짜증과 때론 공허함으로 타인의 마음에만 들고자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로부터 당장 우리 자신이 진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성인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