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자료요구 '폭탄' 을 던지는 이유, 그리고 그 해결책
국회의원들이 던지는 수많은 '자료요구'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라는 공무원들의 하소연, 그리고 정부 기관 등을 경유하여 민간 기업까지 흘러들어온 자료요구 때문에 피감기관도 아닌데 일하고 있다는 기업 종사자들의 하소연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좀 들여다보면, 국회의원이 권한도 없이 기관 등을 괴롭힌다기보다는 오히려 국정 감시와 알 권리 등 국민의 권리 보장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글 하단에 언급하겠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국회의 감사권에 대한 시스템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만약 이에 대해 진짜 근본적으로 또는 시스템적으로 해결을 한다고 하면, 아마 피감기관 등에서는 현재의 '자료요구 폭탄' 이 낫다고 할 것이 오백 퍼센트 확실합니다.
국회는 정부와 행정기관 등을 대상으로 서류와 사진, 영상물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국회법」제128조). 그리고 이 권한은 「국정감사와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국감국조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회증언감정법')」, 「국회입법조사처법」,「국회예산정책처법」에서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우선 정부와 행정기관은 명시적으로 자료요구의 대상 기관입니다. 특히 이들은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으로서「국회증언감정법」에서 다시 한번 자료 제출 의무를 부여받는데 그 수준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제출할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하여도 자료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으며(제4조), 거부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받습니다(제12조).
일반 국민이 정부나 행정기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꽤 많습니다. 국가의 안전보장 및 외교·통일 관계,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보호, 개인정보와 사생활, 법인·개인의 영업상 비밀, 부동산 투기나 매점매석 우려 등입니다(「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제9조). 반면 국회의 자료요구에 대한 제출 거부 사유는 딱 하나,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 사항이면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고 (관계부처) 장관이 소명한 경우뿐입니다(「국회 증언감정법」제4조).
물론 자료 요구는 △국정감사, △국정조사, △안건 심의에 관련된 사항 안에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은 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안건 심의' 라는 게 굉장히 광범위해서, 국정의 범위를 넘어 사실상 위원회가 관장하는 모든 사안이 요구 범위 안에 들어옵니다. 예컨대 과거 BMW 등의 화재 사건을 고리로 자동차 인·허가 과정 및 디젤 자동차 생산 관련 업무까지 들여다볼 수 있고,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를 이유로 건설업계 하청 계약 현황을 두루 살펴볼 수 있으며,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건을 통해 업계 전반의 물류창고 관리 실태를 추궁할 수도 있습니다.
자료요구 대상 기관에 대하여 「국회법」제128조에는 '정부, 행정기관 등' , 「국회증언감정법」에는 '(국정감사·조사) 관계인 또는 그 밖의 기관' , 「국회입법조사처법」과 「국회예산정책처법」에는 '국가기관 그 밖의 기관·단체' 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규정대로라면 국회 자료요구는 국가 기관 외의 민간 기관에도 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럼 이 것이 그저 협조사항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요구를 받은) 누구든지 이에 따라야' 하며(「국감국조법」제10조제4항), 심지어「국회증언감정법」제2조에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까지 붙어 있습니다.
예컨대 A기업이 국회로부터 최근 10년간의 임원 명단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무슨 기업 경영 정보까지 국회에서 달라고 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국회는 얼마든지 그 명분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민간 기업으로 침투(?)한 퇴직 공무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자료요구의 이유가 됩니다.
만약 A기업에서「개인정보보호법」제18조(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 제한)를 이유로 제출할 수 없다고 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 같은 제18조 제2항에 따르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개인정보의 목적 외 제공이 가능한데, 위「국회증언감정법」제2조에 명시적으로 그 '특별한 규정' 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정보의 외부 유출 우려를 이유로 A기업은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 가끔 개인정보라고 하여 자료 제출을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히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 의원실 역시 분명히 책임질 부분이 존재합니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목적으로 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으므로(「국감국조법」제8조),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는 필요 최소한으로 요구되고 사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받은 자료가 언론 등 외부로 유출 시의 책임은 자료를 요구한 국회의원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있는 것이, 전자의 경우에는 퇴직 공무원들의 낙하산 관행을 살펴본다는 목적이 있으므로 자료요구를 못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자료의 잘못된 활용에 대하여도 명시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서 비난 등 정치적 책임에 그칩니다. 그리고 자료 등의 외부 유출은 명백히 법 위반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면책특권' 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가끔 민간 기관에서 국회 자료요구에 응할 필요 없다거나 또는 국정감사에 관계된 자료만 제출할 수 있고 내부 경영에 관련된 자료는 제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전인수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누구든지'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자료요구에 응하라는 규정은 있어도, 민간 기관의 내부 경영 자료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는 국회가 자료를 못 받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만든 것은 국회의 탓도 있습니다. 국회가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제출받은 자료를 언론 등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초에 자료 제출을 안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우려' 때문에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 것은 기업 등의 명분 없는 '버티기' 일 뿐입니다.
(* 감사 또는 검사를 뜻하는 'inspection' 은 말 그대로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려면 속살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속살을 감추기만 할 게 아니라.)
* 출처 : Pexels / Cottonbro.
이렇게 보면 국회가 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회 자료요구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서류 등의 제출과 △증인 등의 출석 요구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기관들과 비교해 봅니다. 우선 감사원을 살펴보면, 감사원은 서류 제출과 출석 요구는 물론 △현지에 직원을 파견하여 '실지감사(實地監査)' 를 할 수 있고, △창고와 문서 등을 '봉인' 할 수 있으며, △금융기관에 관련 '금융거래정보' 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습니다(「감사원법」제25~27조).
금융감독원 역시 금융기관 검사 때 실지감사와 봉인, 금융거래정보 요구를 모두 할 수 있으며(「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제17~21조), 공정거래위원회도 실지감사와 봉인에 준하는 '일시보관' 권한이 있습니다(「공정거래위원회 조사절차에 관한 규칙」제11~14,21조).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체감사 역시 실지감사가 기본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제21조).
여기서의 핵심은 '실지감사' 입니다. 다시 말해 현장에 쳐들어가서 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국회는 실지감사 권한이 없습니다. 그저 제출받은 자료를 멀리서 보기만 할 뿐입니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공기업 임원으로 재직 시에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여기서 실지감사 권한이 없는 국회라면 이 공기업이나 A에게 아래와 같이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근 3년간 회사의 예산 및 결산 자료 일체
- 최근 3년간 회사의 현금 거래 및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
- A가 현재 보유 중인 계좌의 최근 3년간 거래 내역 및 3년간의 부동산·유가증권 거래 내역
- 위 A의 비리 관련하여 회사가 자체 감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 일체
'와, 어떻게 이렇게 무식하게 자료 요구를 하나'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실지감사 권한이 없으면 이런 것 말고는 도대체 방법이 없습니다. 이 회사가 평소에 장부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통상적인 지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무언가 특이 거래가 포착이 되어야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것인데, 통상적인 상황조차 모르니 특이 거래는 도대체 잡아 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저렇게 무식하게 저인망 끌듯이 자료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저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간에 뭘 빼고 내도 알 수도 없으니 민감한 것은 뺄 거 다 빼고, 개인정보 핑계로 익명처리 다 하거나 아예 제출 안 하고, 붙어있는 부수 항목들 다 빼 버리고, 이런 식으로 감사를 무력화합니다. 그래도 저 멀리서 메일로만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감사 무력화 행위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실지감사라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회사의 장부를 다 가져오라고 해서 현장에서 살펴봅니다. 가짜 장부까지 만드는 범죄행위까지는 없었다고 한다면, 회사의 통상적인 장부의 형식과 거래 양태 등을 '거짓 없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자료의 '숨바꼭질' 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다음에 뭔가 의심적인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장부나 서류를 가져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국회라면 이를 메일로 요구하고 제출자는 버티고 또 하면서 감사 시간이 며칠이고 지나갈 것입니다만, 실지감사라면 현장에서 바로 들고 와라, 담당자 들어와서 설명해라라고 요구했을 때 즉각 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 끌기' 도 어려워질뿐더러 감사의 '깊이부터' 달라집니다.
특히나 감사 기간이 정해져 있는 입장에서 이 시간 끌기는 굉장히 감사 무력화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예컨대 국회에서 자료요구하면 '담당자나 결재자가 휴가 또는 부재중이다', '지금 의원실 자료요구가 너무 많아 자료 작성에 시간이 걸린다', '외부로부터 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들어오지 않고 있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 끌기를 해댑니다.
그래서 자료 하나를 요청하면 2주쯤 지나 '맹탕' 인 1차 자료를 받아보게 되고, 이를 다시 구체화하여 재요구하면 그나마 또 1,2주 지나 '덜 맹탕' 인 2차 자료를 받고, 이를 문제 삼아 담당자 직접 면담을 요구하면 또 1,2주 지나 서 담당자가 와서는 정작 자료는 내지 않고 말로 때우고 끝내려고 합니다. 그 사이에 근 1달은 족히 지나가 버리고 국정감사 날짜는 코앞에 닥칩니다. 수십 개 기관을 감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 1개 아이템에 올인할 수도 없고 결국 있는 자료 안에서 감사를 끝내게 됩니다. 이게 피감기관이 보통 국회의 감사를 무력화하는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반면 실지감사에서는 이런 일이 빠르면 1,2시간 안에 오갑니다. 감사인이 눈을 부라리면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얼굴에 벌써 답이 쓰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사의 효율성이 완전히 차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직접 겪었던 자료요구 사례입니다. 2013년도에 나라사랑교육 교재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자(위), 그 이후부터는 교재를 직접 만들지 않고 민간 강사들이 만들게끔 하면서 강의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는 답변서를 제출했습니다. 감사로 지적했더니 시정하는 게 아니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더군요. 물론 일부의 사례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과다한 자료요구 때문에 못살겠다는 공무원 등의 하소연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많게는 30개에 달하는 의원실에서 자료요구 20개씩만 쏟아내도 600개의 자료요구를 받아내야 하는 셈이니, 피감기관 담당자들이 '자료요구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 고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렇게 '원격으로' 메일만 오가는 상황에서는 감사인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감사를 하기가 힘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치 장님이 손으로 물고기 잡듯이 마구잡이로 자료요구를 쏟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장님이 기회를 포착하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나요. 닥치고 허우적대야죠. 그래서 자료요구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감사를 잘할 수 있는 셈입니다. 국정감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료요구 때문에 업무 부담만 가중되는 아주 비효율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오히려 국회의 감사권을 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회가 감사반을 편성하여 피감기관 등에 일정기간 '실지감사' 를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십 개 의원실에서 각자 자료요구하는 것이 없어지고 감사반으로 일원화해서 진행하게 되므로 피감기관의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반면 국회의 감사권은 더욱 강화되어 효율적인 감사가 가능해지고 국회의원끼리 보도자료로 출혈 경쟁하는 관행도 없앨 수 있습니다.
만약 국회가 직접 실지감사까지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러한 감사를 감사원에 대행시키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다만 이 경우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 아니라 국회의장 소속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필수입니다. 이는 헌법 개정사항이라 실행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회가 꼭 정부 등을 들여다봐야 하느냐. 저는 거기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국회라도 귀찮게 안 하면 저들은 아무에게도 견제를 받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이는 정부뿐 아니라 상당수의 민간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