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아니라 '민간감사'를 하는 국회의 잘못된 관행
매년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주요 기업들에는 비상사태(?)가 걸립니다. 그룹 회장이나 CEO에 대한 국회의 '증인' 출석 요구 때문입니다.
보통 언론에서는 무분별한 증인 출석 요구가 실효성도 없고 기업의 경영활동만 저해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증인을 부른 쪽도 문제인 경우가 많지만 이를 막고자 하는 쪽도 굉장히 문제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는 '국정감사 증인' 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점과 국회의 잘못된 관행을 짚어 봅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일반 기업 등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증인(證人)'은 말 그대로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원래 재판에서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이지만, △자기의 경험 등을 진술하여 △사실 규명 등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결국 개념만 놓고 보면 증인은 '협력자' 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협력자에게 여러 가지 의무를 지웁니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증인은 △출석 의무가 있으며 불출석 시 과태료는 물론 감치(監置)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법에 정해진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면 △증언을 거부할 수도 없으며, 만약 △위증을 했다가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당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
*감치 : 법정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판사의 명령에 의해 즉시 구속시켜 가두는 것.
과거 재판을 왕이나 사또가 해서 그럴까요? 어쨌든 증인이 되면 당사자에게 정말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뭔가 얻거나 이득이 될 것도 별로 없는데, △강제로 출석당해서, △숨 막히는 법정의 분위기에 짓눌려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면 진실만을 말할 것을 강요받고, △만약 진술을 잘못했다가는 처벌까지 받으니, 저 같으면 증인은 절대로 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직설적으로 말해 굉장히 (사법) 행정 편의주의적인 제도이고(쉽게 말해 판사만 편하게 하는), 또한 뿌리 깊은 사법부의 특권 의식이 반영된 제도입니다. 이러한 증인 제도가 국정감사에 그대로 차용되어 현재의 '국정감사 증인'을 둘러싼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개념대로라면 '국정감사 증인'은 효율적인 국정감사를 돕기 위한 협력자가 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오히려 증인이 국회의원의 국정감사를 도와주는 것이니 오히려 예우를 갖춰 '모셔와야'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사법 증인' 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국회가 증언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 솔직히 여기에 누가 강제로 나오고 싶겠습니까.)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國政)'을 감사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은 당연히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등이고, '증인'은 피감기관이 아닌 제3자로서 국정감사에 필요한 증언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필요한 증언' 이라는 것은 국정을 감사함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술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A 정부부처가 무리한 사업을 벌여 수십억 원의 예산을 낭비한 채 당초 의도했던 정책 목표도 전혀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이를 살펴보려고 하니 A부처에서 절대 자료를 내놓지 않고 협조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사업도 굉장히 전문적·세부적이어서 자료 없이는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도무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 국회는 감사원 등과 달리 직접 찾아가서 문서를 뒤지거나 할 수 없고 철저히 정부 등이 제출한 자료에 근거하여 감사할 뿐입니다. 따라서 해당 부처에서 악의적으로 자료를 은폐하면 이를 알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마련하겠습니다.)
바로 이럴 때(!) 증인이 아주 유효한 방법이 됩니다. 해당 사업에 참여한 B 민간업체 관계자를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죠. 백이면 백, A부처 관계자는 사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을 본인의 책임이 아닌 B업체 등의 책임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고, 따라서 이 B업체 관계자는 A부처로부터 좀 억울한(?) 부분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국회에서 증언토록 하면 이 B업체 관계자는 그간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충분히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런 경우 A부처는 국회의원실에 백기 투항할 수도 있습니다. 경험담입니다.)
물론 이 B업체 관계자는 웬만해서는 국회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A부처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앞으로 관급 공사는 하나도 받지 못할 것이며, A부처로부터 기타 유·무형의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국정감사 제도는 증인을 강제 출석시킬 수 있으니, 만약 증인을 강제로 부른다면 이렇게 필요 최소한에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필요 최소한이라는 것은 △(민간이 아닌) 정부 부처 등의 잘못을 따진다는 기본 취지 하에, △해당 증언이 피감기관의 잘못을 밝혀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 물론 이 경우에도 B업체 관계자에게 좀 갑질(?)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의 문단에서 지적했듯이 협력자로서 모셔오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강제 출석은 (국회의) 행정 편의주의일 뿐입니다.)
물론 민간에서도 심각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H 공사가 하는 C 공공주택 사업에 D 건설사가 심각한 부실 공사를 하였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때 D사를 증인으로 부른다고 한다면 국회는 D사로부터 사실 확인을 하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만약 D사의 책임을 그 자리에서 따지고 비난하고 호통치고 한다면 그것은 국정감사가 아니라 민간감사가 됩니다. 이는 명백히 국회의원의 권한 남용입니다. D사로부터 사실 관계만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LH 공사나 국토교통부가 관리 감독을 엉망으로 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국정감사입니다. D사의 잘못은 LH나 국토교통부에서 따지게끔 하면 됩니다.
* LH(Korea Land & Housing Corporation) : 한국토지주택공사.
몇년 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있었던 발언을 몇개 소개해 드립니다. 당시 증인은 임대주택 사업을 하면서 부실시공과 과다한 임대료 및 분양가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국정감사에 소환되었는데, 실제 감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참고로 아래 발언들은 모두 국회 회의록으로 일반에 공개된 내용입니다.)
*A의원: (증인은) 입주자를 소작인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입주자는 소작인이 아닙니다. 회장님은 지주고 입주한 분들은 소작인이고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철학에 문제가 있다는 걸 말씀드려요. 2년 연속 부실시공 벌점 1위 이런 불명예가 어디 있습니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국정감사는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입니다만 이 질의를 보면 초점이 한참 빗나가 보입니다. 민간회사 경영자의 철학이 잘못되었다거나 회사에 부실시공에 따른 벌점이 많다는 질의는 국정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들입니다. 인신공격적인 요소도 다소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 질의가 있었는지를 추측해 보면, A의원의 지역구에 임대주택 관련해서 굉장한 이슈가 있었고 그래서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강하게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발언이 있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질의를 본 피해 주민들은 속 시원한 느낌은 받았겠네요. 표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B의원: 임대 보증금을 매년 5%씩 꼬박꼬박 올렸다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들었어요. 요즘 물가상승률이 한 2.5%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25년, 30년 된 아파트 임대료를 5%씩 꼬박꼬박 올려야 될 것인가. 저는 (회장님이) 돈이 아까워서 안 해 주리라고는 생각 않고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에 대해서는 5%가 아니라 3%라도 물가상승률만 인상한다든지 해서... 거저라도 살게끔 해주실 그런 마음을 쓰실 수도 있는 분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역시 B의원 지역구에도 비싼 임대료 관련한 이슈가 있는 모양입니다. 다만 A의원과 달리 읍소 전략을 통해 조금이라도 지역 주민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이것이 질의인지 읍소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국정감사라는 기본 취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습니다.
*C의원: 모처럼 오셨기 때문에, OO에서 앞으로도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서민들의 집 없는 설움을 해소해 주고 또 사기를 충전하기 위해서 회장님의 그동안의 애환과 앞으로의 소망 그런 것에 대해서 한번 듣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질의가 왜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왜 국정감사장에서 민간 증인의 애환과 소망을 들어야 될까요? 의원들의 거친 질의에 지친 증인을 위한 배려는 좋은데, 이럴 거면 아예 질의를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질의가 아니라 아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증인을 감사에 필요한 증언의 목적이 아니라 △본인의 인기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구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주요 민간 기업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국회가 잘못된 권한 남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에 언급하겠지만 필요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 텐데 말입니다.
어차피 정치인의 의정활동이라는 것이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주는 것이 맞겠습니다만, 이렇게 국정감사 증인 제도를 '상식 밖'으로 활용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습니다.
(* "국민의 눈으로, 정확하게, 감시하고, 사ㄹ피겠습니다?)
* 출처 : 국민의힘 홈페이지 / 포토뉴스
일각에서는 국민들을 대신하여 잘못된 민간의 행위에 대해 질타를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증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과연 증인 제도 말고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국회의원이 민간의 잘못을 바꾸고 싶거든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정부나 지자체를 움직이는 게 훨씬 낫습니다. 민간 기업이 국회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부처와 지자체인데 말이죠. 대신 국회는 정부와 지자체를 움직일 권능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정부와 지자체가 요지부동이라면 언론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개인이 언론을 상대로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도 있고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면책 특권이 있어서 발언에 있어 누구보다도 자유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국정감사 증인 제도를 활용하여 민간을 대상으로 압박하려는 시도는, 결국 국정감사 본연의 목적이 아닌 위에서 언급했던 '다른 목적'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들이 법적 권한을 정당하게 쓰지 않고 증인 호출을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는 것으로, 좋게 말하면 국회의 행정 편의주의이고 나쁘게 말하면 국회의 게으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