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움직이는 막후 실력자, 보좌관의 세계

격무와 보람 사이, 이들의 생각과 고민이 실질적으로 국회를 움직인다

by mpd 알멋 정기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 '보좌관' 이라는 세계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2019년 모 방송사에서 보좌관을 소재로 드라마를 방영하면서 일반에 꽤 알려졌습니다.

(* 물론 드라마의 보좌관은 일반과는 다른 초현실주의적 능력을 보여줍니다.)


국회의원은 공식적으로 본인 밑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습니다. 4급 서기관급의 보좌관 2명, 5급 사무관급의 비서관 2명, 그리고 6·7·8·9급 상당의 비서 1명씩 4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턴 비서까지입니다. 이 9명이 국회의원의 사무를 보좌합니다.

(* 2021년 12월 법 개정을 통해 종전 '비서관' 은 '선임 비서관' 으로, 종전 '비서' 는 '비서관' 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보좌관과 비서 사이


제가 하급 비서 시절, 모시던 국회의원이 제 수동적인 일처리를 질타하면서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면 비서일 뿐' 이라면서 '나는 네가 비서라면 너를 쓸 이유가 하나도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 위에서 4급 보좌관, 6급 비서 하는 것은 공식 명칭인 것이고, 여기에서는 실질적 의미의 보좌관과 비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서' 는 사전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직속되어 그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 입니다. 사실상 '대행' 의 의미가 강하죠. 하지만 '보좌관' 이란 말은 '조언' 또는 '조력' 의 의미가 강합니다.


저는 평소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본인의 능력이 출중하여 '비서' 들에게 그 일을 잘 부려먹는 사람, 과연 이런 사람이 훌륭한 국회의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요즘 용어로 그냥 의원 혼자 '솔플(solo play)' 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능력 있는 '보좌관' 들의 보좌를 받으며 때로는 그들의 가시 돋친 조언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훌륭한 국회의원입니다. 이럴 경우 의원 본인의 능력에 보좌관들의 능력이 더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보좌관' 은 본인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모시는 의원에게 여러 가지 창의적인 제안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침없는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관심사나 능력 등에는 한계가 있기에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좌관이 메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국회의원이라는 큰 권력을 누리게 되면 자만에 취하고 시야가 좁아져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제동을 걸어주는 것도 '보좌관' 의 역할입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의 의사 결정 중에 상당수는 '보좌관' 의 의중에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제가 모시던 한 국회의원은, 그래서 본인은 보좌관들의 '아바타' 일뿐이라고 농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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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심사 때 쌓인 자료들입니다. 솔직히 이거 보좌관들도 다 못 봅니다. 하물며 의원님들이 이걸 검토할 시간이나 있을까요?)



보좌관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구현된다


국회의원의 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국회에서의 회의, 각종 공식 행사는 물론 정당의 회의와 행사, 현장 방문, 여러 민원인 등과의 면담, 관계인과의 오찬·만찬에 지역구에서의 일정 등까지 거의 시간 단위로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체력과 열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인정해줘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공부하고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본인이 오랫동안 해왔던 분야라면 모를까, 법안이든 국정감사든 상임위원회 질의든 보도자료든 이 모든 걸 의원이 직접 연구하고 기획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정말로 집중하고 관심 있는 몇 가지를 빼놓고는 대부분 그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보좌관들에게 의존합니다.


따라서 보좌관들이 평소에 관심을 갖고 준비한 내용들이 국회의원의 법안이나 질의나 보도자료 등의 초안이 됩니다. 이 초안이 의원의 동의를 얻으면 바로 '국회의원' 의 이름으로 실행됩니다. 여기서의 보좌관의 재량권은 상당해서, 논리가 분명하거나 또는 (일 잘하는 듯한) '그림'이 나오면 대부분 의원은 OK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설령 의원이 뭔가 의문을 제기하면 보좌관이 그 의원을 설득하여 관철시키기도 합니다.


만약 국회의원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차적으로는 의원의 거부로 실행이 무산이 됩니다. 하지만 그 보좌관이 국회에서 직무를 이어가는 이상 계속해서 잠재적인 이슈가 됩니다. 공식 실행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보좌관이 자료요구 등을 하면서 계속 관심을 이어가는 그 자체만으로 관계 기관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보좌관이 국회의원실을 옮긴 이후에도, 그 이슈가 되살아나서 의원의 이름을 바꿔 다시 실행이 되기도 합니다.

(* 보좌관은 경력 중에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짤리거나 그만두거나.)


예를 들면 게임 쪽에 일가견이 있는 국회의원이 있다고 하면, 이중의 다수는 실제로는 의원이 게임을 별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웬만한 게임을 해본 적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좌관 중에 게임 '고수' 가 있어서, 이 보좌관이 게임 관련해서 법안도 만들고 토론회도 열면서 이슈를 주도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의원 입장에서도 보좌관의 드라이브를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본인이 잘 모르는 청년 관련 이슈를 주도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그만큼 본인의 정책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이니까요. 주위에서는 게임 관련해서 이처럼 관심을 갖고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국회의원이 없다고 칭송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국회의원은 허수아비이고 보좌관이 다 한 게 아니냐고 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좌관의 기획과 의중을 국회의원 본인의 이름으로 그대로 실행하게끔 전권을 부여하고, 필요한 경우 본인이 직접 나서서 실행력을 높인 국회의원의 공적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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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보좌관 시절에 썼던 국정감사 질의서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보좌관이 기획하고 만든 질의서를 참고하여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게 됩니다. 임기응변이 떨어지는 일부 의원님들은 이 질의서를 그대로 읽는 분도 있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을 주로 상대하는 것도 보좌관


모든 최종 결정권은 국회의원에게 있기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국회의원이 직접 모든 일을 챙길 수 없기에 대부분은 보좌관들이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든 지자체든 기업이든 민원인이든 1차적으로 상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보좌관입니다.


어떤 법안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의견을 전하려고 해도 일단 만나게 되는 것은 보좌관입니다. 정부나 공기업에 자료 요구를 하는 것도 보좌관이고 각종 이슈에 대해 설명을 하러 갔을 때 이를 듣는 것도 보좌관입니다. 민원인이 국회의원을 만나겠다고 찾아가도 대부분은 의원 대신 보좌관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상 문고리 권력인 것이죠.


보좌관에게 '(보좌관들은 필요 없고) 의원을 직접 만나겠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 의원이 바쁘다고 약속 안 잡아줍니다. 이게 이상한 게 아닌 것이, 예컨대 국토부를 찾아가서 '장관 만나겠다' 라고 하면 만날 수 있겠습니까? 못 만나는 게 정상이죠. 보좌관 입장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의원을 만날 수 없게 막아서는 게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보좌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잘 설명하고 때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분에 보좌관들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이런 부분이 정부 부처나 기업들에게 필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기업 등이 정부 부처를 상대할 때 장관을 바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1차적으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 과장이나 국장 등을 설득하는 게 먼저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달픈 직업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참으로 보좌관은 보람되고 가치 있는 직업입니다. 본인의 관심사가 국회의원의 의제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보통의 직업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대단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정부 부처부터 기업들까지 깊고 폭넓은 인맥을 쌓을 수 있고, 이들에게 국회의원 못지않은 예우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많은 보좌관들이 국회에서의 '탈출' 을 꿈꿉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고용 안정성이 거의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국회사무처에 면직 신청서를 접수시키면 그날로 바로 실업자로 전락입니다. 제대로 된 성과 평가나 사전 예고도 없이 바로 해고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을 했더니 (해고당해서) 국회 출입부터 막혔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을 지경입니다.


의원으로부터 전폭적 신뢰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4년마다 있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이 낙선하면 또 바로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의원이 재판 등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선고 즉시 또 바로 실업자입니다. 국회에서 실력 있는 보좌관으로 정평이 나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2년까지도 재취업 못하고 백수로 버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워라밸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물론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국회의원 일정이 시작되면 그 이전에 나와서 준비해야 하고, 다음 날 상임위원회 질의 등이 있으면 있던 저녁 약속도 취소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주말에도 수시로 출근해서 일하는 경우도 많고, 국정감사 때에는 거의 한달 내내 자정을 넘나드는 격무에 노출됩니다. 만약 모시는 국회의원이 원내대표대변인 같은 당직을 맡고 있다면 정말로 매일 같이 새벽 출근과 불야근을 각오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원내대표 : 국회에서 각 정당을 대표하는 의원

*대변인 : 여러 이슈나 안건 등에 대하여 각 정당의 공식 입장을 대신하여 전하는 사람


무엇보다 일정의 예측조차 안 되는 것이 괴롭습니다. 미리미리 일정을 잡고 준비토록 하면 좋겠습니다만 △여야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공식 회의 일정을 합의하거나, △갑자기 어떤 큰 이슈가 발생해서 정당 내에서 긴급회의를 잡거나, △예정에 없던 언론 인터뷰가 끼어들거나, △심지어 국회의원이 갑자기 갖가지 업무를 지시하면 보좌관들은 있던 약속도 다 취소하면서라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여행 일정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갑자기 생긴 업무 때문에 비싼 비행기표를 취소해도 누구도 이를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 특히 국회의원을 차량 운전으로 모시는 '수행 비서' 의 경우에는 아예 평소에 점심·저녁 등 약속 잡을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과도 말이지요.)


4년마다 있는 국회의원 선거 때가 되면 몇달 동안 아예 해당 지역구에 상주하면서 선거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 집과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이 기간에는 가족과 생이별하고 낯선 곳에서 합숙하는 신세가 됩니다. 가끔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 선거, 보궐 선거 때에도 의원의 지시로 이런 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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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한 선거 때 묵었던 임시 숙소입니다. 멀쩡한 집과 처자식을 두고 보일러와 세탁기, 냉장고와 이불이 같이 있는 원룸에서 잠을 자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나마 혼자 써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답니다. 열악하면 여러 명이 한방에서 묵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보좌관들이 '플레이어(Player)' 를 꿈꾼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상당히 고달픈 직업인데 왜 이들은 보좌관의 길을 택했을까요? 그저 돈을 벌려고 보좌관을 택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마다 강도는 다르겠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 그리고 권력에의 의지가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직접 바꿔도 봅니다만 그래도 아쉬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항상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게 아니거든요. 정말 꼭 하고 싶은데 의원이 반대해서 못한다든지, 이거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의원이 강력히 지시하거나 정당에서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든지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내가 직접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본인이 캐디가 아닌 참가자, 즉 플레이어(player)가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 출마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가 국회의원을 바로 시켜줍니까. 모시던 국회의원이 강력하게 밀어주어야 지방의회 의원이라도 할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방 의원이라도 출마를 하게 되면 그 자체도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지만 설령 당선되더라도 계속 상당한 돈이 들어갑니다. 집에 월급 갖다 줄 생각을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낙선한다면? 몇 년간 좋게 말하면 와신상담, 나쁘게 말하면 백수 신세가 됩니다.

(* 돈 없으면 정치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평생 보좌만 하면서 세상을 바꾸련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보좌관이 아닙니다. 이렇게 눌러앉으려만 한다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 의지는 점점 사라지고 관성과 타성에 젖은 일처리와 격무로부터의 도피만 늘어갈 뿐입니다. '의지' 는 보좌관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이렇게 많은 보좌관들은 평생 '플레이어' 가 되는 꿈을 꿉니다. 드라마에서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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