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필요한 것은 리더십과 인간성이지 업무 전문성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장을 새로 임명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사의 전권을 가지고 계시다면 아래 중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임명해야 가장 잘한 인사가 될까요?
① 정권의 실세에 가까운 '유력 정치인'.
② 해당 기관을 관할하는 정부 부처의 '퇴직 고위 공무원'.
③ 관련 업무와 관련되어 명성이 있는 '대학 교수'
④ 해당 기관의 '내부 공채 출신 임원'
⑤ 특정 자격 조건을 걸고 외부에서 '공개 오디션으로 선출'
(* 여기서 공개 오디션이라는 것은 통상적인 공모 절차와는 다른, 슈스케나 미스트롯 식의 서바이벌식 채용 절차를 말합니다.)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 등의 영향으로 ⑤ 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제가 생각한 답은 '정답이 없다' 입니다.
(* "가서 잘 점령하라고~ 보은 잊지 말고.")
* 출처 : Pexels / Pixabay
기존의 조직 계통을 무시하고 외부에서 인맥 등을 통해 들어온 사람을 흔히 '낙하산' 이라고 표현합니다. 위의 '보기'들 중에 보통 ①(속칭 '정피아') 이나 ②(속칭 '관피아') 를 주로 낙하산이라 표현합니다만, ③·④·⑤ 에서도 얼마든지 낙하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낙하산' 이라는 표현 속에는 누군가 낙하산을 '투하' 한 사람이 있다는 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투하한 사람은 바로 인사권자 혹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외부 유력자일 것이고 이들이 정해진 인사 절차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죠. 이들이 아무나 뒤를 봐주지는 않을 터, 결국 '낙하산 제1조건' 은 '인맥' 입니다.
개인이 100% 소유한 업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명목상이나마 인사에 관하여 정해진 절차(규정)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인맥에 대한 내용은 없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맥이 크게 작용하였던 겁니다. 결국 '낙하산 제2조건' 은 '정해진 인사 절차의 무시' 입니다.
(* 물론 모두가 정해진 절차를 다 지켜서 임명했다고는 합니다...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 라는 말도 있지만, 낙하산이라도 조직을 잘 이끌고 존경도 받고 그러면 낙하산 소리를 별로 듣지 않습니다. 절차도 무시하고 무리수로 데려왔는데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으니 더 욕을 먹는 것이죠. '낙하산 제3조건' 은 '무능력 또는 무개념' 입니다.
(* 여기서의 무개념은 사람 됨됨이부터 잘못된 사람을 일컫습니다.)
낙하산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면서도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 바로 '능력' 에 대한 것입니다. 과연 낙하산에게 있어 능력과 전문성은 어떤 개념일까요? 다시 말해 '능력 있는 낙하산' 은 과면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낙하산의 능력은 통상적인 능력과 다를 수 있으며, 그 낙하산이 맡게 되는 직무의 성격을 고려하여 따져봐야 합니다.
① 실무자로서의 낙하산? 그것은 채용 비리일 뿐
예컨대 A 사원이 낙하산으로 신입 직원이 됐다고 해봅니다. 분명히 낙하산인 만큼 보통의 신입 사원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신입 직원은 그런 걸 기대하고 뽑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뽑힌 신입 직원이라면 그것은 낙하산이라기보다는 채용 비리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실무자급 경력직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리자가 아닌 실무자 라인에서는 낙하산이 별로 필요 없다고 봐야 합니다.
② 관리자로서의 낙하산? 업무의 성격상 필요하다면
통상적인 관리자라면 사실 낙하산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관리자 중에는 외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가 필요한 직위가 있습니다. 예컨대 주로 기자를 상대해야 하는 홍보실이라면 기자 출신의 낙하산이 관리자로 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직무를 잘 수행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그럼 홍보실 직원도 낙하산으로 뽑아도 되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외부와의 관계에서는 '직위' 도 좀 중요합니다. 어떤 기자가 조직을 상대할 때 그 응대를 홍보실 대리가 하는 것과 실장이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실장이 응대할 때 좀 더 '예우' 를 받는다고 생각하죠. 따라서 실무자보다는 관리자가 낙하산인 게 훨씬 유효합니다.
③ 낙하산 임원에게는 실무에 대한 전문성은 필요 없다
낙하산으로서의 임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밑에서 올라오는 결재를 열심히 처리해 주고 조직의 내부 문제를 찾아서 빠르게 해결하고 이런 역할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의 부족한 외부 관계를 보완해 주는 '외부적 역할' 이면 충분합니다.
여기서의 '외부적 역할' 이라는 게 바로 '인맥' 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컨대 평생을 은행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 B 임원이 관련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 등을 상대하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B 임원 입장에서는 사원 때부터 임원이 될 때까지 금융위원회는 모두 '상급 기관' 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금융위 퇴직 공무원 출신인 C 임원 입장은 좀 다릅니다. 현재의 금융위 실무자는 모두 자신의 '후배' 입니다. 퇴직하였다고는 하나 아직 영향력이 살아 있습니다.
(* 이런 점 때문에 보통 관피아가 널리(?) 쓰입니다.)
이 C 임원은 은행 창구에서 한 번도 근무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만 은행에서 임원을 수행함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어차피 임원은 결정하는 자리이지 직접 일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임원에 있어서는 '관련 업무에 대한 이해도' 만 있으면 자격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과 전문성은 '외부에 대한 영향력' 입니다.
(* 물론 모든 임원이 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낙하산으로서의 임원이라면 가져야 할 능력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④ 최고 책임자의 직무 전문성은 보편적인 리더십
특히나 최고 책임자인 D 사장이라면 더더욱 직무에 대한 전문성은 필요 없습니다. 예컨대 대통령이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할지 살펴보면, 모든 사안에 대해 넓고 깊은 이해력이 있다고 대통령을 잘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이 이것저것 잘 안다고 참모들의 건의를 묵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명한 모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처럼 말이죠.
캡틴의 능력이라면 통찰력과 결단력, 그리고 포용력 등입니다. 또 각 자리에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각론은 몰라도 됩니다. 자세한 건 참모나 주위에서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면 되고, 그보다도 좋은 것은 임명한 자들에게 각각 '위임' 해서 처리하면 됩니다. 따라서 외부의 여러 조직에서 리더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람이라면 다소 분야가 다르더라도 낙하산의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보통 낙하산들에 대해 '(실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고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낙하산들에게 전문성을 따지는 것은 어찌보면 '프레임' 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프레임을 만든 것은 여권의 낙하산을 공격하기 위한 '야권' 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직 사회에서 본인들이 낙하산을 가기 위해 만들어낸 프레임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낙하산들에게 전문성을 따질 경우 가장 유리해지는 것은 '관피아' 들입니다.
(* 낙하산에 정답은 없습니다만 오답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소수가 자기들끼리만 다 해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낙하산의 유형 별로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지 살펴봅니다.
① 정권의 실세에 가까운 '유력 정치인' (소위 '정피아')
[장점] 보통의 관피아들과는 다르게 국회 쪽 인사들과의 친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당의 경우 국회 쪽 인사가 부처의 최고 책임자(장관 등)가 되거나 청와대(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으니, 다른 유형의 관피아들과는 깊이부터(?) 다른 인맥과 정보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개혁 성향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은 복지부동을 싫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발굴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이러이러한 이유로 안 됩니다' 라는 말을 할 때 '왜 안돼?'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정치인들입니다. 그래서 부패나 매너리즘 등에 빠진 조직을 개혁하기에 최적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점] 솔직히 업무에 대한 이해도는 좀 떨어집니다. 제 아무리 관련 상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하더라도 수십 년을 그 분야에서 일한 공무원이나 교수, 내부 직원들의 전문성을 결코 따라올 수 없습니다. 실무에 깊게 관여해야 하는 임원 이하 자리라면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책임성 부분에서도 다소 문제를 보일 소지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본인의 '업적' 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직무 전반에 대한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② 해당 기관을 관할하는 정부 부처의 '퇴직 고위 공무원' (소위 '관피아')
[장점] 우리나라는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기업 등의 조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보통인지라('관치'라고 하죠), 이러한 영향력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우산' 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당국의 감독이나 인·허가 등에 관련해서는 탁월한(?) 영향력을 보입니다.
업무에 대한 전문성 논란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실무는 해보지 않았다지만 관련된 부처 등에서 수십 년 근무했다면 사실 전문성을 따지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단점] 오히려 부처 등에서 파견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동향이 바로 부처 등에 바로 공유됨은 물론, 친정(?)의 의중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려고 할 때 앞장서서 제동을 걸기도 합니다.
정피아와는 다른 또 다른 측면에서의 책임성 문제도 대두됩니다. 어차피 퇴직하고 '놀다 가는' 보은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점령군이 전리품을 챙기듯이 업무추진비 등만 쓰며 '누리기만' 합니다.
③ 관련 업무와 관련되어 명성이 있는 '대학 교수'
[장점] 교수들 중에는 정피아의 개혁 성향과 관피아의 전문성을 모두 갖춘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인만큼은 아니지만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는 상당히 가지고 있죠. 그게 학자라면 당연한 양심 아닐까요? 이게 조화가 잘 되면 어찌 보면 최고의(?) 낙하산일 수 있습니다.
[단점] 반면 위 장점이 독으로 작용하여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나타나곤 합니다. 조직에 필요한 개혁도 제대로 진행을 못 하면서(현실 타협) 한편으로는 어설픈 개혁 성향으로 조직의 소소한(?) 관행들만 뒤집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꼭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권위적인 행태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원래 교수가 되면 학교에서 절대자(?)에 가까운 권력을 누리는데 그 성향이 조직 운영 방식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처럼 본인의 친정(?)이 있기에 나중에 책임성 논란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고, 정치 쪽 인맥이 부족하기에 오히려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결정을 거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이런 경우를 속칭 '폴리페서' 라고 부르죠).
*폴리페서(polifessor) : politics(정치)와 professor(교수)의 합성어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 보통 여기서의 정치 참여란 의견 개진 수준을 넘어, 입신양명을 꿈꾸며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줄을 대는 것을 의미함.
④ 해당 기관의 '내부 공채 출신 임원'
[장점] 최고의 전문성을 자랑합니다. 이미 실무를 수십 년 거친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 또한 이미 오랫동안 직접 근무했던 조직이라 내부 직원들과의 친화력과 포용력도 단연 다른 낙하산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임명 시에 조직 내외로부터의 논란으로부터 가장 자유롭습니다. 내부 승진을 통해 조직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다는 '입지전적' 의 선례가 생겼다고 거꾸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에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 특히 더 수용성이 좋습니다.
[단점] 조직 개혁에 가장 최악인 유형입니다. 본인 스스로 조직의 관행이 몸에 배어 있고, 설령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부 직원들과의 관계 때문에 쉽게 모진 결정을 하기 힘듭니다.
또한 외부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최악입니다. 정계 쪽은 당연히 모르고 정부 부처 등의 과장 하나도 상대하기 버거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인의 단점을 커버하고자 가끔은 정치인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변신(?)하여 내부의 후배들에게 지탄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는 교수가 전문성도 있고 낙하산으로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아 보이지만, 여러 기관 등의 얘기를 들어보면 여러 관피아 유형들 중 내부에서 제일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 교수입니다.)
* 출처 : Pixabay / perianjs
위에서 보듯이 낙하산이든 아니든 정답은 없습니다. 낙하산이라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니고, 낙하산이 아니라고 무조건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소위 요즘 용어로 '케바케'죠.
그러나 낙하산을 투하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은 ① 외부적 능력의 보유 입니다. 어차피 낙하산이라는 것이 내부 조직의 부족한 역량을 외부로부터 메우는 개념이므로 낙하산 자체가 외부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외부적 능력이라는 것은 좁게는 폭넓고 깊은 인맥을 뜻하고 넓게는 통찰력과 개혁 성향 등을 포함합니다. 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이 단지 유력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임명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낙하산을 쓸 이유조차 없습니다.
다음은 ② 인성, 즉 사람의 됨됨이 입니다. 아무리 여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인성부터 잘못된 사람을 들이면 조직 내외가 힘들어집니다. 여기서의 인성이라 함은 그저 마음이 착하고 이런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준법과 윤리의식, 진실성과 성실성, 겸손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③ 목표의식과 노력하는 자세 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왜 내가 이 회사에 와야 하는지' 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뚜렷한 목표의식이 필요하고 또한 계속해서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낙하산인 만큼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할 수는 있는데 뭔가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조차 없다면? 그것은 일하러 온 게 아니라 놀러 온 것에 다름 아닙니다.
④ 특정 집단만의 고정적인 인사를 배제 하여야 합니다. 특히 관피아의 경우 마치 어느 자리는 당연히 자기네들 퇴직자들이 가는 것처럼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여기는 기재부 자리, 여기는 금융위 자리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것은 완전히 보은 인사일 뿐이고 특정 집단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