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많이 내는 의원이 나라를 망친다

법을 많이 내는 국회의원이 '일 잘한다'는 것에 대한 반론

by mpd 알멋 정기조


'일 잘하는' 국회의원은 어떤 의원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법률 개정안(이하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 의원이 일 잘하는 의원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많이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언론 등에서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를 비교하며 질책해 온 까닭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안 공장' 이 되었습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자료(「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2020.12)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회는 4년 동안 무려 24,141건의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를 국회의원 1인당으로 계산하면 80.5건에 달합니다(20대 국회 기준). 1인당 기준으로 미국의 2배, 프랑스의 23배, 일본의 62배, 독일의 67배, 영국의 91배입니다. 정말 세계 최고로 일 많이 하는 의원님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17대 국회(2004~2008)에서는 7,489건이었던 것이, 18대(2008~2012)에는 13,913건, 19대(2012~2016)에는 17,822건, 20대(2016~2020)에는 24,141건까지 늘었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개원 후 1년 동안(2020.5.30~2021.5.29) 무려 10,218건이 발의됐습니다. 임기 초에 발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종 임기 말까지(4년)는 3만 건 돌파가 유력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단언컨대, 법안을 많이 내는 의원이 나라를 망칩니다. '이게 무슨 X소리?'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쭉 그 이유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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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을 접수 받는 국회사무처 의안과에는 '의안 5만 건 돌파' 의 기념패가 걸려 있는데, 이는 2013년 10월의 일로 제헌국회 개원 이래 65년만의 일입니다. 그런데 21대 국회 1년 동안 벌써 1만 건이 넘게 발의된 것이지요.)



절차도 안 거친 설익은 법안들이 쏟아진다


법안을 '제대로' 내기 위한 소위 'FM(Field Manual)' 에 가까운 절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①자료 조사 입니다. 이게 인터넷 검색으로 딱딱되는 게 아닙니다. 정부나 공기관 등으로부터 자료를 받거나(법정 기한 10일), 국회입법조사처국회예산정책처, 국회도서관 등 입법 지원 기관에 조사를 의뢰해서 결과를 받아야 합니다(보통 14일 이상). 아니면 외부인 등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는 등의 발품(?)이 필요합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유사한 법안이 발의된 게 있는지도 살펴야 하고, 해당 이슈에 대해 분석한 여러 보고서도 찾아서 참조해야 됩니다.

*국회입법조사처 : 입법·정책 관련 사항을 조사·연구하고 관련 정보 및 자료를 제공하는 국회 산하 입법 지원 기관.

*국회예산정책처 :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에 대해 연구 분석·평가하는 국회 산하 입법 지원 기관.


그다음 ② 관계인 의견 수렴이 필요합니다. 내가 발의한 법률안이 정부 소관 부처나 관련 공기업, 그리고 민간 기업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조금 더 철저하게 하려면 학계나 시민 단체 등의 의견도 들어야겠습니다.


그다음에 ③ 법률 개정안 성안(成案), 즉 법안의 발의서와 법문(法文) 등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경우 베테랑 보좌관들은 직접 성안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국회사무처 법제실의 도움을 받습니다. 정부가 법안을 발의할 경우 법제처의 심사를 거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법제실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기본적인 법률 형식도 갖추지 못했다고 창피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은 ④ 비용 추계 입니다. 법안 중에 예산이나 기금의 사용이 수반되는, 다시 말해 '돈이 들어가는' 법안은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 추계서를 반드시 첨부하게끔 되어 있습니다(「국회법」제66조 제3항). 이 비용 추계에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법안을 미리 발의해 놓고 나중에 비용 추계서를 제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FM' 대로라면 입안자가 발의 전에 미리 비용 추계서를 받아 보고 예산이 과도하게 필요한 경우 법안 내용을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비용 추계 :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재정지출이나 수입이 증감, 즉 재정 상의 영향을 미리 추산하는 것


이렇게 법안이 완성되면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⑤ 공동발의 요청을 해야 합니다. 법안을 발의하려면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국회법」제79조 제1항). 다른 의원실들에게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무조건 동의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절차도 꽤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쳐서 비로소 법안이 국회사무처 의안과에 제출되면 ⑥ 발의가 완료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할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21대 개원 후 1년 동안 10,218건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중 정부 발의 법안이 336건으로 이를 제외하면 국회의원 1인당 32.9건입니다. 휴일까지 포함해서 11일마다 법안 1건씩 만들어낸 셈입니다. 평균을 상회하는 의원들 중에는 아마 3, 4일마다 법안을 꼬박꼬박 낸 훌륭한(?) 의원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거의 컨베이어 벨트 공장 수준입니다.


당연히 법안 발의의 절차는 과감하게(?) 생략됩니다. ①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머릿속에서 그려진 법안이 ②의견 수렴 없이 ③법제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안을 만들어서 ④비용 추계는 나중으로 미루고 ⑤설명과 검토 없이 친한 의원실들에게 공동발의를 구해서 ⑥바로 발의됩니다. 빠르면 이 절차가 당일에(!)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만들어진 법안, 이대로 통과돼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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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서울시)의 검토의견서(왼쪽) 및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오른쪽) 사례입니다. 'FM' 대로라면 이것들을 다 받아보고 반영도 하고 그래야 될 것입니다만...)



쏟아지는 법안에 검토할 시간조차 없다


법안이 발의되면 국회 내 소관 상임위원회회부됩니다.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심사하기 전에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입법조사관)의 검토를 받습니다. 이들이 쓴 검토보고서는 법안을 심사할 때 참고자료가 되는데, 정부와 관계인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립적인 입장에서 법안을 검토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입법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합니다.

*상임위원회 : 국회에서 입법 등의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하여 각 전문 분야로 나누어 조직한 위원회.

*회부 : 심사 권한을 가진 위원회로 보냄.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 위원회에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심사·검토 시 필요한 자료와 의견을 제출하는 국회사무처 소속 공무원.


그런데 이렇게 법안이 쏟아지고 있으니 견제의 역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21대 개원 후 1년 동안 발의된 10,218건의 법안 중에 가장 많은 법안이 회부된 위원회는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로 1,550건이나 됩니다. 이중 검토보고서 작성이 완료된 법안은 1,219건입니다(2021.10.7 기준).


2021년 10월 현재 행안위에는 1명의 수석전문위원과 2명의 전문위원, 그리고 실제 법안 검토를 담당하는 13명의 입법조사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재자 3명을 빼고 13명의 실무자가 1년 동안 개인당 93.8건의 법안을 검토했다는 뜻인데, 휴일까지 포함해서 3.9일마다 법안 1건씩 법안 검토보고서를 '뽑아냈다(!)' 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보다 더 꼼꼼하게 법안을 살피고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게 입법조사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안의 문제점을 충분히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 4일 만에 검토보고서를 만들어내야 하니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입법조사관의 검토보고서가 사실상 정부의 검토보고서와 대동소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가 법안에 대해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고, 관계인이 제출한 의견과 본인의 의견을 조금 붙여 검토보고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실제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의원들은 어떨까요? 법안에 대한 스터디는 전혀 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와 보좌관들이 준 간략한 자료만을 보면서 심사합니다. 보좌관들도 법안 검토할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1일마다 본인 법안을 만들어내는 판에 다른 법안 검토할 시간이나 있겠습니까?


결국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는 완벽하게 정부의 입장에 휘둘리게 됩니다. 국회의 입법 기능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법안을 내도 심사 테이블에 오르기 어렵다


역시 같은 기간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된 행안위를 기준으로 살펴봅니다.


같은 기간 행안위에서는 국회의원 발의 법안 359건과 정부 발의 법안 36건, 합계 395건의 법안이 의결됐습니다. 가장 많은 법안을 의결한 상임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155건이 아직 계류 상태입니다.

*계류 : 원래는 선박 등이 육지의 접안시설에 묶여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법률관계에서는 제안된 안건이 의결되지 못하고 위원회나 본회의에서 논의 중이거나 논의할 대상으로 놓여 있는 상태를 말함.


법안이 많다 보니 모든 법안을 심사 테이블에 올리지 못하고 '선별' 해서 올릴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아래와 같은 '원칙 아닌 원칙' 이 적용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① 최근에 언론 등에서 큰 이슈가 된 내용을 포함한 법안

② 각 당 위원장이나 간사 의원이 발의하거나 적극 추진하는 법안

③ 쟁점이 없어 빠른 논의가 가능한 법안

④ 정부가 제출·추진하거나 동의하는 법안


*간사 (의원) : 국회 상임위에서 안건 협의 등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의원으로 각 교섭단체 당 1명씩 둘 수 있음.

*교섭단체 : 국회에서 중요한 안건 등을 협의하기 위해 두는 의원단체. 개별 정당 또는 연합 정당으로 구성 가능하며 국회법 상 20인 이상이 필요함.


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②·③·④ 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② 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상임위 위원장이나 간사 의원이 발의한 법이 아니면 심사 테이블에도 오르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고, 이를 좀 더 신랄하게 꼬집으면 힘센 소수의 의원만이 '입법 독점' 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③ 이 원칙이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법안의 경우 법안 심사 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의결이 불발되는 것이 보통이라 일단 쟁점이 없는 법안들부터 먼저 처리하자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 배경에는 ⓐ 법안을 심층 논의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법안소위')가 한 달에 1~2회 밖에 안 열리고, ⓑ 1번의 상임위에서 많아야 3,40개 전후의 법안만을 심사할 수 있으며, ⓒ 심사대기 중인 법안이 너무나 많다는 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논의할 법안이 많이 쌓여 있으니 빨리 통과시킬 수 있는 법부터 논의하는 게 보통이라는 뜻입니다.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 : 위원회에서 각 법률안을 심층적으로 심사하기 위하여 설치한 소위원회. 보통 10명 남짓으로 구성됨.


④ 번이 어찌 보면 가장 황당합니다. 법안 심사는 국회의 고유 권한인데 정부가 추진하거나 동의하는 법안이 주로 심사되는 이유는 뭘까요? 매번 법안 심사 전에 부처는 해당 상임위의 여당 간사 의원에게 '이달의 주요 추진 법안' 을 제출합니다. 그리고 여당 간사는 정부 정책에 협조한다는 이름으로 이 법안들을 주요 심사 대상에 올립니다. 신랄하게 꼬집으면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보다 정부가 반대하는 법안이 법안 심사 테이블에 오르기가 더 어렵습니다.


법안을 내도 임기 4년 내내 제대로 심사 한번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요컨대 국회가 심사도 하지 못할 법안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통과 안 돼도 상관없다. 실적만 된다면!


이렇게 통과도 안될 설익은 법안들을 쏟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국회의원 본인의 실적 때문입니다. 어차피 300명이나 되는 국회에서 개별 의원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법안의 의결 여부는 사실 개별 의원의 깜냥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법안 발의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예컨대 A의원이 간호사들의 권익과 처우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간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고 가정해봅니다(현재 간호사 관련해서는 독립 법률이 없음). 일반적으로 이 법안은 간호계는 적극 찬성이 예상이 되지만 의사나 병원, 간호조무사 쪽에서는 반대가 예상됩니다. 특정 이익단체를 위한 법안이라는 오해를 살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쟁점이 적지 않으므로 이 법안이 실제로 의결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 A의원은 간호계를 위해서 큰 일을 해준 셈이고 이에 따라 간호계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지역의 시·도 간호계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 를 얻을 수도 있고 간호 관련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법안 발의의 이유는 충분한 것이죠.

(* 위 사례는 어디까지나 상상적 예시이며 특정 사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유는 더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법안 발의 실적이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직접적인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각 정당이나 언론에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법안 발의 실적은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특히 위 사례와 같은 제정법의 경우에는 더 가산점을 받습니다. 제정법은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개별 의원 입장에서 더 무서운 것은 정당에서 공천 심사할 때 이 부분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후보로 공천받기 위해서는 '실적 관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안 발의에 큰 욕심이 없는 의원들조차 '중간은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가 중간은 해야겠다고 하고 있으니 갈수록 실적 경쟁의 '커트라인' 이 올라가는 겁니다. 국회 전체가 '닥치고 발의' 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이 와중에 각종 편법과 술수가 동원되기도 합니다. 많은 법안을 내기 위해 △이익단체로부터 법안을 '제공받아' 제출하기도 하고, △정부 공무원이나 이익단체 등에게 낼만한 법안을 '가져오라' 라고 강요하기도 하며, △다른 의원이 낸 법안을 '일부만 바꿔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더 심하면 △벌금이나 과태료 등의 '숫자만 바꿔서' 내거나, 한자어나 일본식 단어 등 △특정 어휘가 들어간 법안을 전부 찾아서 '단어만 바꾸는' 법안을 몇십 개씩 한꺼번에 내기도 합니다.


법안3.JPG

(* 이렇게 줄 세우는데 안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근본적 질문, 법을 꼭 계속 바꿔야 합니까?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국회가 계속 법을 활발히 바꾸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요?


서두에서 인용한 국회미래연구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을 정도로 법을 많이 바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평균 법안 통과·반영 수를 보면 미국은 193건, 일본은 112건, 독일은 136건, 프랑스는 88건, 영국은 고작 31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려 1년 동안 2,200건의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들 선진국보다 훨씬 법 체계가 후진적이어서 계속 바꿀 필요가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제헌 때부터 독일과 일본 등의 법률 체계를 상당 부분 인용해서 만들었고 그 뒤에도 어느 나라보다 빨리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여 법률을 바꿔 왔습니다. 오히려 수백 년 동안 법 체계를 바꾸지도 않은 선진국들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시대의 대응력 측면에서 훨씬 뒤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괜히 선진국입니까. 그렇게 법을 바꾸지 않아도 국가를 운영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몇 가지 시대의 격변에 따른 시급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법을 대부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법을 왜 이렇게 많이 바꿀까요? 이는 결국 국회와 정부의 쓸데없는 실적·성과 경쟁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입법이 너무나 많다는 얘기고 이를 부채질한 것은 일부 언론들의 부적절한 보도 행태 때문입니다. 법안을 많이 내야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프레임을 만든 것이 그 원인입니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는데, 얼굴을 예쁘게 하겠다고 성형을 수십, 수백 번 하면 얼굴이 예뻐질까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 체계도 그러합니다. 기존 법률을 계속 바꾸고(개정) 새로운 이름의 법률을 만든다고(제정) 우리 삶이 훨씬 편리해질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수십 번 부동산 대책 내놓아도 국민 주거 복지가 향상되기는커녕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했던 것이 그 예입니다.


꼼꼼한 검토와 충분한 의견 수렴과 심도 깊은 심사를 거쳐 신중하게 발의된 법안 하나가, 설익은 법안 수백 개 의결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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