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야근이 일상이라면 회사 자체가 생산성이 없는 것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 시간은 2019년 기준으로 1,967시간이라고 합니다. 1년을 52주로 단순 계산하면 주당 노동 시간이 37.8시간 정도 됩니다. 콜롬비아가 2,172시간으로 1위이고 덴마크가 1,381시간으로 가장 적습니다. OECD 평균은 1,743시간, EU 27개국 평균은 1,593시간입니다.
그런데 좀 의아하신 분 많을 겁니다. 주 40시간이면 주 5일제 기준으로 하루 8시간씩이고 하루 8시간이면 소위 '나인 투 식스', 직장인들이 말하는 '칼퇴'입니다. 우리나라 노동 시간이 이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그거밖에 안 된다고?'
주변에 6시 칼퇴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천지입니다. 회사에서 저녁밥 먹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출근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통계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심각하게 길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노동시간이 길어도 노동생산성이 떨어져서 문제라는 재계 주장을 보면 그야말로 진격의 분노, 아니 폭풍 분노가 일어납니다. 대한민국은 '야근 공화국'입니다.
* 2020년에는 주당 노동 시간이 조금 더 줄어들었네요. 1,908시간입니다. 참고로 위 그래프에는 국가마다 2020년, 2019년으로 다른 통계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 출처 : OECD DATA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야근이 심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겁니다.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하나는 시간 외 근무(초과근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이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있어서이고, 둘은 시간 외 근무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거부)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정당한 보상입니다. 야근이나 특근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면 억울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환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기껏 밥 한끼 정도나 얻어먹고 야근수당도 없이 밤샘 야근까지 하고 나면, 억울함을 넘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까지 듭니다.
그런데 만약(!) 추가 근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반드시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충분한 보상이라는 것은 「근로기준법」 상의 임금 특례, 즉 주 40시간 이상의 초과근로나 밤 10시 이후의 야간근로, 그리고 휴일근로에 대하여 적어도 통상임금의 150% 이상을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4명의 팀원을 거느리고 있는 '김바둑' 팀장이 팀원 4명을 모두 10시 정도까지 야근시키고자 합니다. 계산하기 편하게 팀원의 통상임금은 시간당 2만 원으로, 추가 근로에 따른 지급은 3만 원(150%)으로 하겠습니다.
이 경우 팀원들이 모두 4시간씩 추가 근무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회사는 팀원들에게 총 48만 원(3만 원×4시간×4명)을 지급해야 됩니다. 더하여 '김바둑' 팀장과 직원 4명, 총 5명의 식사 비용도 당연히 회사에서 내야 되겠습니다. 식비는 인당 1만 원씩 총 5만 원이라 가정하겠습니다. 참고로 초과 근무 중 식사시간은 당연히 근무시간으로 간주하여야 합니다. 초과 근무 때문에 회사에서 '원치 않은' 식사를 하게 된 셈이니까요(아니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럼 이 '김바둑' 팀장은 선택을 해야 됩니다. 회사가 한 53만 원 정도 되는 추가 비용 지출을 할 수 있게끔 실장이나 사장을 설득하든가, 아니면 오늘의 일이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팀원들을 퇴근시키든가, 이 두 가지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제가 만약 '김바둑' 팀장이라면 직원들을 집에 돌려보낼 것 같습니다. 왜냐, 우리 팀에서만 하룻 저녁에 50만 원 넘게 쓰겠다고 회사를 설득할 자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꼭 필요한 상황이면 모를까, 웬만해서는 직원들 야근 안 시킬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시간 외 근무에 대하여 비용 개념을 철저히 적용하면 이렇게 야근이 최소화된다는 겁니다.
야근을 시켜도 추가 지출이 없는 노동 환경에서는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는 야근을 더 시키는 게 장땡입니다. 원래는 일이 많으면 추가 고용도 고려해야 할 것이지만, 직원을 한명 채용하느니 그냥 있는 직원 야근시키는 게 훨씬 비용을 절약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비용 개념이 없으니 아주 작은 '만약'을 위해서 직원을 야근시키는 일도 많게 됩니다. '김바둑' 팀장이 야근을 하다가 잠깐이라도 팀원에게 일을 거들어달라고 할 필요가 있다면 팀원을 퇴근시키지 말고 자리에 대기시켜 놓는 것입니다. 팀원은 내내 할 거 없어서 인터넷하고 놀기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팀장이 잠깐 뭐 시키는 이 '만약' 때문에 팀장과 똑같이 혹은 그 이상 야근을 하는 겁니다.
더 심각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팀원들은 전부 일이 끝나서 눈치 보고 있는데 '김바둑'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습니다. 얼핏 보면 바둑 두면서 노는 것 같은데 갈 생각을 안 하는 '김바둑' 팀장 때문에 팀원들은 가고 싶어도 눈치를 보면서 못 가고 자리를 지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회사가 밥값 정도만 내면 되니까요.
이것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오염배출권 제도의 도입 필요성과 유사합니다. 기업들의 환경오염 유발에 대해 경제 개념을 도입하면 불필요한 환경오염이 최대한 억제된다는 것이 오염배출권 제도의 도입 취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이런 아주 불합리한 노동 환경은 시간 외 근무에 '비용'을 철저히 적용시키면 이렇게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주 52시간 근로제를 먼저 도입한 것입니다.
* 출처 : 환경부 배출권등록부시스템
여기에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돈을 쓸 테니 야근 무조건 하라고 하면 어쩔 거냐는 것입니다.
생산성 좋은 회사에서는 돈 쓰면서 야근시킬 수 있습니다. '김바둑' 팀장처럼 하루에 50만 원 쓰더라도 그 이상 충분히 벌어내는 회사라면 무조건 직원들 줄야근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어쩔 때면 집에 일이 있어서, 또는 약속이 있어서 아무리 돈을 주더라도 야근 안 하고 갔으면 하는 때도 있을 것인데 회사에서는 무조건 줄야근시키니 '미쵸' 버릴 노릇인 것입니다.
또 이런 부작용도 있습니다. '김바둑' 팀장 밑의 4명 직원 중에는 '장뚝딱'이라는 똘똘한 사원이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 3명은 '강쇼핑', '정야구', '박게임'인데 일 시키면 딴짓만 합니다. 그러면 '김바둑' 팀장은 '장뚝딱' 사원만 줄야근시키고 나머지 사원들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이걸 뭐라 할 수만은 없습니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장뚝딱' 사원 입장에서는 '미쵸' 버리는 겁니다. 다른 사원들은 다 집에 갔는데 왜 나만 야근을 시키냐 이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가장 좋은 것은 야근에 대하여 직원들의 선택(거부)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빨리 가야 하는 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인 최대 노동 시간을 설정(당연히 법정 시간보다 적게)하거나, 초과 근로에 대한 보상을 초과 임금 외에 승진 인센티브나 보상 휴가 등으로 다각화하는 것이 있겠습니다.
집에 가려고 하는 '장뚝딱' 사원을 계속 야근시키려면 '김바둑' 팀장이 '장뚝딱' 사원을 설득시켜서 주저앉히고, 또 평소에 인센티브도 주고 임금도 올려주면서 유인해야 할 것입니다.
* 국회 보좌관은 정말 야근 많기로 둘째 가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퇴근하면서 찍었던 사진인데 저때 시간이 밤 11시 53분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저는 빨리 퇴근한 거였네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이후, 이러한 제도는 공기관이나 웬만한 대기업에는 어느 정도 적용되고 정착이 됐습니다. 문제는 중소기업, 특히 소기업입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7월부터 이 주 52시간 근로제가 중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습니다. 주 52시간 근로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은 2018년 3월에 이루어졌지만 그 적용은 사업장의 규모 등에 따라 다릅니다. 우선 상시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8년 7월부터 시행됐고, 상시 50인 이상은 2020년 1월부터 시행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2021년 7월부터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 규정(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도 2021년 7월부터 시행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이제 야근 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소위 '김영란 법'이라 일컫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니다. 법으로는 공직자나 교원, 언론인 등에게 3만 원 이상의 식사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만 현실은 이와 다릅니다. 감독이나 처벌이 허술하죠. 그렇게 따지면 3만 원 이상 메뉴만 있는 식당은 가지도 못할 텐데요.
주 52시간 근로제도 이와 같습니다. 보나 마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일을 더 하라고 할 것입니다. '누가 보냐, 괜찮다' 그러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왜 위법을 저지르냐고 따지거나 노동청 등에 제소하거나 그러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회사 나갈 각오를 해야 할 테죠.
또한 주 52시간 자체도 근로시간이 짧은 게 아닙니다. 엄청 깁니다. 주 5일제를 감안할 경우 하루 10시간, 그러니까 아침 9시 출근이라면 밤 9시까지 근무입니다. 아마도 저녁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빼려고 하겠지요. 매일 밤 9시 퇴근, 이건 상당한 수준의 야근입니다. 집에 가면 10시가 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1년을 52주로, 주 52시간을 연중 내내 적용하면 무려 2,704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근로시간이 나옵니다. OECD 1위 콜롬비아(2,172시간)보다 무려 500시간 이상, 퍼센트로는 24.5%P나 많은 압도적인 근로시간입니다.
가장 문제는 초과 근무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150% 이상을 주어야 한다는 규정은 2007년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 지켜졌습니까? 중소기업들 중에 이 규정 지킨 곳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 특히 경제지에서 이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 조의 기사를 냈고 지금도 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돈 주면 남아나는 회사가 없을 거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건대 법을 지켜서 경영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면, 법이 과도한 측면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 자체가 그만큼 경쟁력이 없다는 말 아닐까요?
직원들을 줄야근시키면서 고혈을 짜내야 운영이 되는 회사... 이건 근로자가 생산성이 없는 게 아니라 회사 자체가 생산성이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