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혼자인지 여럿인지가 아니라 같이 먹기를 '강요'하는 것에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 편입니다.
별 약속 없이 밥을 때워야 할 때면 국밥집에 들어가서 혼자 국밥 먹고 나오거나, 아니면 천국이네 들어가서 라면에 김밥을 먹거나, 심지어는 편의점 들어가서 우유에 샌드위치도 혼자 잘 먹고 나옵니다. 오랜 백수 생활을 겪은 '내공'입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혼밥' 문화가 좀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저 같은 '나홀로 식사족'들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여자 혼자 식사를 하고 있으면 '특이한 여자네, 여자들은 밥 같이 먹는 걸 좋아하던데' 또는 '저 여자 참 불쌍해 보인다'라는 생각, 남자 혼자 식사를 하고 있으면 '저 사람 친구도 없나'라거나 '성격이 이상한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전에 회사 다닐 때에도 그랬습니다. 다들 같이 밥 먹으러 나갈 때 저 혼자 따로 먹는다고 하면 '참 어울리지 못한다', 나아가 '회사 분위기 망친다'라는 얘기까지 들었죠.
같이 먹는 걸 당연시하는 우리나라 식문화, 과연 좋은 것일까요?
* 혼밥 '전용석'에 앉으면 왠지 주변 시선을 의식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는 우리 민족의 오랜 가난, 그리고 독특한 '정(情)'의 정서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혼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옛날에는 술을 굉장히 '귀한 음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판에 술이란 것은 사치였을까요? 제사상에 굳이 술을 올리는 이유는 술이 그만큼 귀한 음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귀한 음식을 가족이나 친구 등과 나눠먹어야지 혼자 몰래 먹느냐, 혼술을 죄악(?) 시 했던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일단 옆 사람이 끼니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아니면 진짜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 정도가 아니면 굳이 주위에서 밥을 챙겨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밖에서 이렇게 '혼술'을 했다가는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기 십상입니다.
일단 제가 회사 다닐 때 무리에서 이탈(?)해서 따로 밥을 먹은 이유를 떠올려 봅니다. 제일 컸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 다른지라 여러 명이 식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조율(?)이 필요합니다. 그럼 그 조율이 서로 간에 충분한 의견 교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전체의 의사를 지배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죠.
'뭘 먹을래?'라고 물었을 때 '아무거나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정말 아무거나 다 괜찮은 건 아닐 겁니다. 뭐 전반적으로 상관은 없지만 싫은 건 분명히 있을 수도 있고,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지만 분위기상 말을 못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식당을 정하고 들어가서도 그렇습니다. '빨리 나오게 메뉴 통일하죠'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그냥 찌개 하나 구이 하나씩 놓죠'라는 설정으로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는 걸 가지고 좋고 싫고를 얘기하면 '왜 나이에 맞지 않게 편식하냐' 혹은 '이렇게 먹는 것도 사회생활이다'라는 핀잔이나 면박이 날아오기 일쑤입니다.
식사는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문화입니다. '식문화'. 식사시간조차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거기에서는 문화는커녕 한 줌의 여유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둘째, 계산에 대한 문제입니다.
같이 먹고 나면 필시 누군가 계산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무리에서 내가 위쪽이다 생각하면 '이거 내가 계산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참 후배들, 한참 후임들 앞에서 더치 하자고 말 꺼내기가 민망합니다. 이 부담은 생각보다 큽니다.
물론 정말 최근 몇년 사이에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같이 식사한 사람들이 각자의 카드를 꺼내 계산하는 풍경, 저는 하지만 아직도 굉장히 낯선 풍경입니다. 벌써 한물 간 세대가 돼서 그런 것일까요.
그나마 같이 먹는 게 두 명이라면 교통정리가 편합니다. '에이 됐어, 내가 낼게 다음에 네가 사'. 그런데 여러 명이라면? 그리고 그 멤버가 고정적이지 않다면? '먼저 내가 사면 다음에 얻어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한 명이 계산하고 나머지가 나중에 현금으로 주는 '정산' 방식은 더 문제입니다. 같이 먹은 사람들이 현금으로 따박따박 내놓지 않습니다. 반 이상은 현금이 없죠. 그러면 일단 쿨하게 '나중에 줘'라고 합니다...만, 그게 나중에 안 돌아오는 게 문제입니다. 그중에는 상습범(?)도 있습니다. 그러면 참 거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 그 사람에게 '그때 안준 밥값을 달라'라고 하는 것도 사람 쪼잔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오늘 밥은 내가 산다'라고 공언(?) 하지 않는 이상, 같이 먹으면 이렇게 계산할 때도 여러모로 피곤합니다.
* 최근에 각자내기(더치페이) 문화가 많이 확산은 됐지만 여전히 정산은 골칫거리인가 봅니다. 오죽하면 정산 기능까지 생겼을까요.
* 출처 : 카카오페이 블로그
그 외의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셋째, 먹는 시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밥 먹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만, 그래도 사람마다 편차가 분명히 있습니다. 나는 아직 반 정도밖에 못 먹었는데 벌써 다 먹고 이쑤시개질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여자분들의 경우에는 이런 경험, 아마 다 해보셨을 겁니다.
물론 말은 편하게 합니다. 천천히 먹으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보다 상사나 선배이거나 아니면 클라이언트 같은 갑이다? 그러면 대부분은 남은 식사 편하게 못합니다. 빛의 속도로 수저질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다 먹었다고 하고 식사를 포기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사 시간 때문에 메뉴부터 바꾼 경우도 많았습니다. 식사를 빨리 해야 되겠다 싶으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국밥류 같은 건 시키지 않습니다. 뜨거워서 흡입(?)하기가 어렵거든요. 비빔밥 종류가 최고입니다. 반찬에 손도 안 대고 비빔밥만 먹으면 제일 빠릅니다.
넷째, 위생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식문화의 전반적인 문제입니다만, 같이 먹으면 위생상 정말 별로입니다. 한 반찬에 여러 사람 젓가락이 오가는 건 기본이고, 찌개 같은 걸 시키면 숟가락이 들락날락합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대화만 해도 감염된다 하는데 침까지 섞는다면 말할 필요도 없겠죠.
* 우리나라는 찌개·전골이나 쟁반 요리 같이 앞에 음식을 놓고 같이 먹는 문화가 있는데, 국자나 젓가락 등으로 각자 덜어먹지 않는 이상 솔직히 위생상 진짜 별로입니다.
같이 밥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는 그 맛일 겁니다. 실제로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 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과 교감, 그리고 친밀 상승을 고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상 속에서는? 우리나라 사람 그렇게 식사 안 합니다. 대표적인 게 일터에서 동료 등과 밥 먹을 때입니다. 들어가서 메뉴 나올 때까지는 각자 휴대폰 만집니다. 그리고 메뉴 나오면 말도 없이 10분, 15분 만에 다 먹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같이 밥을 먹어야 되네 마네 하는 게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이런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의 식사,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주유하는 기분이다'라고...
<덧붙임>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 식당의 태도입니다. 1명이라고 하면 표정부터 일그러지고 구석 자리로 안내하는, 심하면 '합승'을 시킨다거나 아예 손님 받기를 거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부 식당의 속 좁은 장사 행위도 혼밥을 어렵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