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게 개인 성격이라고?

'급해'는 갑질 또는 무능력의 다른 말

by mpd 알멋 정기조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가진 선천적 기질일까요?

아니면 빠른 산업화와 전쟁을 겪고 생긴 후천적 기질일까요?


이유야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안 급한 사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비교되는 게 이탈리아 같은 반도국인데, 이를 반도국의 기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혼자만 급하면 상관없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한테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사는 민족


'일상이 전투다!'


군 야전부대에서나 어울릴 듯한 이 말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도 전투적으로, 공부도 전투적으로, 놀 때도 전투적으로... '화끈하게', '열정적으로' 수준을 넘어 모든 걸 '전투적으로'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글세요. 우리가 상시 전투태세를 강조하는 북한도 아니고... 남자들이 퍼뜨려 놓은 군대문화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이런 생각은 생각보다 깊게 일상에 침투해 있습니다. 근 30년 가까이 되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정권의 잔재이기도 하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예로부터 조직을 장악하여 각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눈 뜰 때부터 잠잘 때까지 경쟁합니다.

출근길부터 길거리의 다른 자동차들과 F1 '레이쓰(!)'를 펼칩니다.

지하철에서는 2분 뒤 다음 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타려고 쇄도합니다.

도착하면 사무실에 누가 나보다 먼저 와 있나부터 살핍니다.

점심 식사 시간 되면 또 사람들 몰리기 전에 맛있는 식당 가겠다고 '레이쓰(!)' 합니다.

워킹 타임에 무한 경쟁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퇴근 시간에도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시계를 수도 없이 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있는 2~3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연타합니다.


뭐 이것은 자의 반 타의 반입니다. 스스로 성격이 급한 것도 있지만 출근 시간 1분만 늦어도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직장 문화, 점심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꽉 차는 주요 식당의 상황 등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편하게 퍼져 있는 걸 그냥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어디 가나 '레이쓰(!)'입니다.


급해1.jpg

* 출처 : Unsplash / Joshua Burdick



세상 급한 일이 참으로 많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문제는 '원치 않게' 급해지는 경우입니다.

특히나 이런 경우는 소위 갑을관계에서 더 많이 등장합니다.


'죄송한데 저희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급작스럽게 부탁드리게 됐습니다.' ...

... 말은 이렇게 하는데, 결론은 야근을 하든 주말특근을 하든 빨리하라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금요일 오후 5시에 클라이언트로부터 다음 월요일 아침까지 제안서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솔까, 클라이언트가 서버에게 일 던지면서 안 급하다고 한거 보셨습니까? 하긴 '천천히 해주세요'라고 하면 정말로 천천히(!) 해서 일부러 급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근무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사가 부하한테 일 던지면서 급하다고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낮에는 일 없어서 팽팽 놀 지경인데도 암말 없다가 퇴근 시간 다 돼서 일 던지면서 급하다고 하면, 결론은 야근을 해서라도 내일까지 끝내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배려는 없는 게 보통입니다. 서버 혹은 부하 직원이 불필요하게 야근·특근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오더 던져 놓고 대비하게끔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뭔 일이 바쁜지 내내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 갑자기 뇌리에 스치면 그때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일이 됩니다.


급해2.jpg 치타슬로(Cittaslow) 공식 로고

*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는 국제슬로시티운동 '치타슬로'. 우리나라에는 슬로시티(Slow City)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2021년 7월 기준으로 무려 16개의 슬로시티가 선정돼 있습니다. 역시 이탈리아도 성격이 급해서 이런 운동까지 생겼나 봅니다.

* 출처 : Cittaslow International



성격 급한 게 자랑입니까

이렇게 의뢰든 오더든 내리는 사람의 특징은 똑같습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라고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내 성격이 원래 좀 급해서'라고 합니다.


돌직구를 날리자면, 이건 본인 스스로 '무능력하다'라고 자인하는 꼴 밖에 안 됩니다.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불과 몇 시간 이후도 예견하지 못하고 갑자기 일을 만듭니까?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스케줄 관리도 못해서 일을 급하게 만듭니까? 미리 했으면 안 급했을 일을 말입니다.


이런 일이 어쩌다 있으면 몰라도 매번 하는 모양새가 이렇다면 이건 습관이나 성격이 아니라 무능력입니다.

본인 성격이라고요? 그럼 그 무능력한 성격을 뜯어고치셔야죠.

급한 게 성격이라고 하는 건 본인 얼굴에 침 뱉는 것 밖에 안 됩니다.

대한민국 직장 문화가 모두 그렇다고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근로자의 지옥이지요.


자기 성격이 그러하다면, 성격을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일을 급하게 만든다면, 일 습관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고,

회사 문화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다면, 위에서부터 솔선수범해서 하나라도 근로 문화를 바꿔야 하는 것이고,

회사의 여건이 항상 그렇다면, 사장님까지 모두 다 앉혀다가 직원을 더 뽑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못 하겠다 혹은 안 된다 한다면 그것은 본인이나 회사가 무능력한 것이거나, 아니면 이러한 문제를 바꿀 의사조차 없고 서버나 직원들에게 갑질을 계속하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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