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너무 큰 기대는...
교토 3박 4일 일정 중 아주 어렵게 예약한 식당이 교세라 시립미술관에서 바로 4-5분 거리에 위치한 "야마모토 멘조우" 라는 미슐랭 빕구르망 우동집이다. 블로그 후기들을 보니 시기별로 예약 방법이 조금씩 달랐던 것 같은데, 주로 전화나 현장 예약이 가능한 것 같고 최근에는 인스타 DM도 예약이 가능한 것 같아 (원래는 노쇼 문제로 인스타로 예약을 안 받다가 근래 다시 받는 것 같다) DM으로 예약을 시도해 보았다.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DM을 보냈는데... 상대방은 일본어로 답을 해서 이걸 구글 번역기로 다시 돌려서 나는 영어로 또 대답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예약을 했다. 더 웃긴 건, 식당에서 답이 오면 바로바로 칼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한~참 뒤에 답이 온다는 것... 좀 황당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이틀정도에 걸쳐 (그러나 체감상 한 3일은 걸린 듯...) 겨우 내가 원하는 날 라스트오더 시간에 맞춰 예약에 성공했다.
결국 이 일정에 맞추느라 교세라 미술관의 MUCA전도 좀 급하게 본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안타깝지만 할 수 없지. 일단 왔으니 최대한 많은 경험은 하고 싶었고 뭐 하나 포기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즉흥적으로 미술관 오는 길에 사 먹은 아라비카 교토라테를 포기했어야 했다... 나란 P인간... 여기서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해 버렸다.) 어쨌든 다행히 MUCA 전 다 보고 바로 이동해서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고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이곳 우동의 면발은 떡마냥 엄청 쫄깃쫄깃해서 씹기 힘들 정도에 같이 주는 집게로 잘라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1차적으로 그 면발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우동 맛 자체가 그렇게 대단할 거라는 기대는 사실 없었다), 2차적으로는 닭가슴살/우엉 튀김이 그렇게 맛나다는 후기가 많길래 튀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양이 엄청 많다고 하는데 일단 다 시켰다. 닭가슴살 튀김 세트에 우엉 튀김 추가! 언제 여길 또 오겠어! 궁금하니까 다 해결하고 가야지.
면발은 역시나 매우 쫀득하고 씹는 식감이 아주 선명했다. "내가 면을 씹고 있구나"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그런 아주 진~득한 밀도. 그거 말고는 사실... 쯔유가 뭐 엄청 맛있다거나 특별한 맛은 아니어서, 우동 자체에서는 아 엄청 대단한 면발이다!라는 걸 경험한 정도였다. 역시나 후기대로 면 양이 엄청 많았고 좀 남겼다.
닭가슴살 튀김은... 생각 없이 허겁지겁 먹다가 도중에 "아 맞다, 이거 닭가슴살이지?!" 하고 흠칫 깨닫게 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부드러웠다. 이렇게 부드러운 닭가슴살을 내가 먹어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이렇게나 많이 준다니, 너무 혜자아닌가 감동스러웠다...
우엉튀김은 우엉 자체의 향이 매우 진해서 좀 독특하다고 느꼈달까. 한국에서 먹는 우엉과 다른 건지 (물론 지역이 다르니 좀 다르긴 하겠지?) 아니면 뭔가 특별한 조리법에서 오는 차이인 건지 요리는 못하고 먹을 줄만 아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뭐 괜찮았다. 사실 막 "와 진짜 맛있다! 미친 맛이다!" 이거까진 모르겠고... 어쨌든 면은 남겼으나 튀김은 다 먹었다.
그리고 식사 중에 셰프님이 손님 하나하나에게 다 인사하고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등 섬세하게 접객을 해주셔서 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인데, 개인적으로는 뭐 굳이 파인다이닝이라던지 단골이 되지 않은 이상 난 그냥 조용히 편하게 밥만 먹다 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이렇게 또 과하게 친절히 물어봐주시면 나도 또 애써 친절하게 화답을 해야 하니...
이곳은 지난 교토 방문 때 예약 없이 무작정 들렀다가 매장 이용은 마감이고 take-out만 가능하다고 해서 못 먹어보고 그냥 돌아왔던 곳이라 미련이 조금 남았던 곳인데, 이젠 미련 없다~
이 날 일정을 마치고 늦은 저녁으로 Gion Duck Noodle로 향했다. 오리국숫집인데, 일단 국내 플랫폼 후기도 거의 없고 (아주 드물게 몇 개 있다), 간판이 너무 귀엽고, 그리고 한 번도 안 먹어 본 "오리국수"라는 메뉴 자체가 너무 신선해서, 진짜 교토 오기 전부터 여기가 제일 기대되는 맛집(이라고 미리 단정 짓기엔 너무 섣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이었다.
아, 그런데 사실 교토가 예상보다 조금 쌀쌀했고, 이 날 새벽 3시 반부터 일어나서 움직인 하루라 발도 좀 아프고 지쳤는데, 거의 8시가 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0분가량 기다렸던 것 같다. (일본의 식당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은 게 좀 안습이다...)
웨이팅 하면서 (고기 5점에 계란까지 올라간) "스페셜"로 무조건 시키고, 고기 5점은 오리 가슴살/다리살 중에 개수를 정할 수 있다고 해서 가슴살 3, 다리살 2로 정했다.
매우 지쳐가던 와중에 겨우 웨이팅이 끝나 입장을 했고, 좋은 음악에 인상 좋은 사장님, 힙한 직원까지 내부의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또다시 설레었다. 심지어 내가 시킨 국수가 나왔는데, 너무나도 예쁜 플레이팅에 말도 안 되게 좋은 향이 (데코된 산초의 향이 진짜 엄청 시트러스하고 미치게 좋았다... 산초 향이 원래 이런가?) 나의 기대감을 정말 한! 껏! 올려놓았다.
그리고 국물 한입을 떴다. 어라... 그런데 이건 무슨 맛이지... 난해했다... 응? 왜 이 미친 듯이 상큼한 향과 대비되는 이 알 수 없는... 비릿하다고 해야 하나... 한약냄새라고 해야 하나...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가 힘드네... 이건 대체 무슨 향과 맛인 거지??? 내적 당황감이 몰려왔고... 이 와중에 오리고기는... 그래... 오리고기도 담백한 고기는 아니지... 뭔가 좀 느끼했다... 이럴 수가... 내가 본 후기들은 맛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결국 40분 기다리고 먹는데 10분도 안 걸렸고 면은 반 남겼다. 나 진짜 음식 웬만해서 안 남기는데...(그래서 "단백질 보충"을 목적으로 고기만큼은 꾹 참고 다 먹었다...) 이건 정말 다 먹기가 싫었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속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면은 반쯤 남기고 그 알 수 없는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국물과 면을 번갈아가며 향을 맡고 맛을 조금씩 더 보고 했다. 으아 여전히 확실치가 않았다... 여전히 미스테리다...
계산하는데 직원이 아주 친절히 국수맛은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대놓고 맛없다고 말할 순 없으니 맛있다고 했다... (답은 정해진 질문 아닌가...) 오늘따라 유독 참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또 미련하게 걸어서 숙소로 왔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번 교토 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컨디션 난조로" 다음 날 예약해 둔 식당 하나를 취소했다... 미슐랭 1스타 이자카야였는데, 지금 이 기분, 이 상태로는 뭔가 또 실험적인 음식을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큰 기대가 두려웠다. 갑자기 먹는 게 부질없게 느꼈졌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극단적이라고??) 그냥 단풍이나 실컷 보고 가야겠다,라고 다짐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