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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2025)

영화를 보며 떠오른 잡다한 생각들

by HeeHee

1. 내가 이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인 애매한 나이인 것 같은데, 요즘 이렇게 발랄하고 해맑은 20대 때까지의 젊은이(?) 들을 보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저 나이 때는 진짜 무모하고 좀 더 과감하게 살아도 되는 나이인데 나는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게 내 성격이다~ 난 생긴 대로 살 거다~'라는 고집을 부리며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이게 좀 후회스럽다. 어릴 때 뭔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양분을 쌓았어야 하는데. 아니면 이렇게 조용히 안(?)에만 있을 거였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정말 진득하게 파서 덕후처럼 지식이라도 쌓던지. 지금은 애매한 느낌이다. 유독 요즘 내가 그동안 살면서 쌓아온 것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런 생각이 더 짙어질 것 같아 살짝 두렵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아이들은 진짜로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단순히 "보내"거나 "버티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편견을 버리고 이것저것 좀 해볼까 하는데, 사실 지금 이 단계에서는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뭘 해본다고 해봐야 다 뻔한 거기서 거기인 행동들 뿐인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아예 주위 환경을 바꾸는 게 더 쉽겠지만 그게 쉽나. 이제는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칙칙한 직장인일 뿐인데.


2. 위와 살짝 연관된 생각이지만 영화와는 아예 별개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요즘 인간 수명이 너무 길어진 게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살짝 스쳐갔다. 주말인 데다 폭염이어서 시원한 몰 안에는 실내로 피신 온 듯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중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에게 눈길이 갔다. 학부모들은 이제 대부분 본인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사는데 그게 40대 언저리고, 옛날에는 인간 수명이 그 정도 되었으니 사실 그때쯤이면 인생을 대충 다 살아본 것 아닌가, 싶은 거다. 그때면 더 이상 살면서 별로 새롭거나 순수하게 즐거운 일도 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인간이 더 이상 뭐 새롭거나 대단한 것을 할 일이 확률적으로 거의 희박해지니,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잘 케어하고 신경 쓰며 살아가는 것이 (인정하긴 싫지만) 자연적 수순인 것이 역시 맞는 건지. 물론 이제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예전에 비하면 월등히 많아지기도 했고 SNS나 티비에서야 나이 먹어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사실 막상 주위에서는 그런 사람들 얼마나 되려나...?


3. 뭐든 딱 그 나이일 때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이 아이들의 우정을 보면서, 저때야 저렇게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살 친구들이지만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결국 다 뿔뿔이 흝어져 먼 훗날에는 기억 속에나 남을 것이라는 것을 저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 너무 비관적인가?) 저때는 저렇게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하구나. 그래서 학창 시절에 교우관계를 잘 맺으라는 건가 보다. 사회에서는 이렇게 순수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잘 없거니와 내가 누구한테서 그렇게 크게 영향받을 일도 그때만큼은 잘 없으니. 누가 처음 만들어 낸 단어인지는 몰라도 '시절인연'이라는 말, 정말 맞는 말이다.


4. 쿄우가 톰에게 물어본다. "내가 대학생 때 유타를 만났어도 우리가 친구가 되었을까?" 쿄우와 유타는 유치원 때부터 소꿉친구이자 절친인데,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오면서 유타의 '무모함'에 질려버린 쿄우는 감정적으로 점점 유타와 멀어진다. 이때 톰이 대답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런데 우리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짜식... 어린아이인데 속이 참 깊구나. 다 큰 어른인 내가 배운다. 손절이 너무나도 쉬워진 지금 현대사회에, 참으로 다정한 마음이다.


5. 한 한 달인가, 혼자 오며 가며 들여다본 일본어 기초 단어가 한두 개 들린다. 다시 공부해야지. 근 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외국인 아이들도 여럿 출연하는데, 다들 일본어를 너무 잘해!!! (적어도 일본어를 못하는 내 귀에는?)


6. 약간 영화랑은 살짝 결이 다른 생각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직접 그 일을 만들어야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건 회사에서도 그렇고 어디에서나 다 일맥상통한 진리일 텐데,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고 알량한 '앎'일뿐이다. 늘 스스로 이 사실을 상기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만들어서라도 하자!


7. 역시 유전의 힘인가... 감독 네오 소라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인데 음악이 좋다. 특히 엔딩 씬 너무 좋았다. (그나저나 요즘 다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들이 이제 다 내 세대 감독들이다... ㅠㅠ 그래, 이 나이쯤이면 뭔가 이렇게 이루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야 비교하지 말자...)

영화 엔딩곡 (출처: YouTube)

굳이 영화관에서 봐야 할까? 싶긴 했는데 후기를 대충 보니 음악이 좋다고 하고, 딱히 더 당기는 영화도 없는데다가 시간이 남아서 더위도 피할 겸 아주 무더운 주말 보게 된 영화다. 그래도 나름 화제가 된 영화인데, 내가 딱히 선호하지는 않는 청소년물에 왠지 잔잔한 일본 감성일 것 같아서 상당히 고민이 되었달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막 엄청 '역시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어!!'까지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영화관이라는 세팅이 아니었다면 분명 난 나중에 OTT에서 보다가 여러 번 끊어봤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 번에 완주하게 해 준 세팅이라는 점에서 영화관에서 본 것을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미 영화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피엔드에 대해 후기를 올린 것 같아, 나는 영화와는 딱히 상관없는, 그냥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어 기록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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