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식탐과 식비 사이 일상실험 리뷰
작년 5월 일상이 실험이고 인생이 장난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생관을 브런치에 선언문 적듯 적었다. 이미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레 적은 건, 이 세상 사람들만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살다 보면 나 자신조차도 문득문득 그 사실을 잊고 '내가 잘못 살고 있나'라는 자괴감에 빠지는 걸 어쩔 수 없기에. 굳이 굳이 적어가며 더 재미나게 나대로 살아보자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게 분명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라는 당부. 혹 자괴감에 빠져있다면 이런 인간도 사는데 뭐 어떠냐는 위로.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돈을 식비에 쓴다. 정확히 말하면 카드를 긁는 대부분의 순간이 음식점- 식당이나 카페, 슈퍼나 마트, 술집-이란 소리다. 죽일 놈의 식탐과 가난한 주머니의 한정된 식비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게임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합리적 소비자(?)로서 알뜰한 소비를 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변하지 않았지만 작년 5월에 적어두었던 기준들은 계속되는 일상 실험 속에서 조금씩 바뀌었다.
작년의 기준을 리뷰해볼까나.
-> 더더욱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내가 정말로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우선은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양보다는 질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뭐 그렇게까지 거창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음식은 일상을, 가치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의 취향을 알려면 내가 원하는 걸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아야 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도 내가 좋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여유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학비 걱정을 해보았거나 집세 걱정을 해본 이들이라면, 경험으로 알리라. 일하느라 먹을 시간이 없는 경우도,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고 결국은 배를 채울 수 있는 양이 많은, 몸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를 고르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 이따금 기분전환으로 먹는 게 아니라 정크푸드로 매 끼니를 때우는 건 즐겁지도 좋지도 않고 심지어는 스스로가 일만 하는 부품같이 느껴진다는 걸, 걸쩍지근한 입맛과 찌뿌드드한 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 텀블러는 포기했다.
노트북과 어댑터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무너지는데 텀블러는 무슨. 보온성이 좋은 텀블러의 무게는 상당하다. 게다가 매번 씻는 것도 고역이다. 내 한 몸 씻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텀블러를 씻어주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근데 진짜 궁금하다. 텀블러 들고 다니는 분들, 어깨, 괜찮아요?
그래서 나는 어딜 가든 머그로 주세요! 다회용 컵이요! 를 외치게 되었다. 특히 좋은 점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하수도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물 인심도 후하다. 집에서는 수돗물을 받아두었다가 끓여서 먹고 밖에서는 식당에서 카페에서 다회용기에 제공해주는 물을 마시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건 특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더더욱 느낀 사실,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제공된 물을 마시는 것도 위험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물을 마시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플라스틱 병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는 걸 알기에.
->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식 정도까진 가능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긴 했었다. 좀 더 능동적으로 좋아하는 걸 먹어보자(?)는 야심 찬 다짐과 함께 나의 게으름을 고려해 밀프렙으로 효율적인 준비를 해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도시락을 싸 보려고 시도했건만 쉽지 않았다. 우선 장소의 문제. 예전에 사무실로 출퇴근하며 일할 때에는 도시락을 싸서 점심에 도시락을 먹곤 했었다. 그러나 작년 한 해는 일정한 사무실 없이 일하다 보니 도시락을 싼다고 해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고 대부분의 회의나 약속이 카페나 식당이기에 굳이 음식을 싸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다음으론 시간의 문제. 일 때문에 바빠지니 더더욱 준비할 겨를이 없어졌다.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해서 들고 다니는 하나하나가 다 일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가능했던 건 사두었던 빵이나 견과류, 바나나 같은 요깃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난폭해지는 이중인격을 급진정시키기 위한 용도로 쓰긴 했지만 그 역시 귀찮았다. 가방 속에 넣어두고는 까먹는 일도 다반사.
결국 하루에 한 끼 -아침이나 일찍 들어왔을 때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간단히 준비해둔다.로 바뀌었다. 현재 가장 맛있게 먹고 있는 건 무지방요거트와 과일. 가끔씩 땡기는 라면.
-> 혼자서는 가능한데 사람들과는 어렵다.
음식이 곧바로 음식물쓰레기가 되는 걸 싫어하기에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이미 남길 만큼 시키지도 않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우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음식이 남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는 더더욱. 작년 한 해 동안 꽤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새삼스레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
반복되는 경험 속에 나의 선택은 내가 시킬 때는 적절한 양을,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남은 경우는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수 밖엔 없었다.
-> 쉽지 않다. 워낙 일회용 포장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게 더 비용이 적은지도 의문.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공용공간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카페나 식당은 이미 음식을 파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이외의 공간에는 내가 음식을 싸가져 가거나 사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좀 더 원하는 걸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실제로는 더 많은 수고와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포트럭 파티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식비는 여전히 만원 안팎이다.
물가는 치솟고 식당의 밥값도 계속해서 오르는데 재미있게도 나의 하루 식비는 여전히 만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 "씨발 비용"으로 날리는 돈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도 고백한다.) 심지어 작년의 하드보일드 한 동남아-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얼마 전의 홍콩 여행에서도 나의 식비는 여전히 하루 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평균을 낸다면 오천 원에서 만원 사이로 낮아진다.
혼자 생각해본다. 가난이 몸에 밴 건가? 적게 소비하자는 태도가 몸에 밴 건가? 둘 다? 그런데 난 지금도 특별히 부족함이 없는데? 심지어 꽤 즐거운데?
그래서 나는 식비를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내 나름의 음식 취향의 공유에 몰두하기로 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먹는 걸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들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지극히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취향을. 일상실험을 공유하며 놀아보려 한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해서 다른 일상의 취향들까지도.
나의 일상을 채우는 의, 식, 주, 생활의 터전이 되는 환경들까지 다뤄보려 한다.
이 공유로 다른 이들도 킥킥 웃으며 즐길 수 있다면, 함께 수다 떨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의 취향도 나누고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더욱 풍성해 수 있다면 더더욱 땡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