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의식은 어디에 있을까.

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by 문성 Moon song Kim

1.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서성이던 엄마가 다급하게 외친다. 우유 한 잔만 줘.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 듯 근심걱정이 가득한 엄마의 표정에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알겠어. 잠시만요. 가방을 내려두러 방에 들어간 사이에도 엄마는 참지 못한다. 방에 따라와 초조하게 말한다. 우유 한 잔만 줘. 잠시만. 가방 놓고. 서둘러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꺼내는 동안에도 엄마는 참지 못한다. 식탁앞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말한다. 우유 한 잔만 줘. 엄마, 차가운 거 싫어하잖아, 잠시만. 전자렌지에 지금 데우고 있어. 엄마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들리지? 응. 조금은 안심한 기색이 스친다.

엄마는 우유를 마신다. 우유를 마시다 말고,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나 우유 줘, 우유 어딨어? 정말로 몰라 묻는 표정. 그 잠깐, 할 말을 잃고 내 마음이 무너진다. 엄마 손에, 마셔봐. 그거 우유야. 엄마는 우유를 다 마신다. 요양사님이 만들두고 가신 배추전에 손을 뻗는다. 젓가락을 쥐어준다. 엄마 할 수 있잖아. 젓가락으로 먹자. 엄마는 집히는 대로 입에 가져간다. 한 접시를 다 먹고 밥을 한 그릇 다 먹고도 엄마는 우유를 달라고 한다. 언제 깼는지 잠들어 있던 아빠가 거실로 나와 말한다. 당신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먹었는 줄 알아? 나도 말한다. 안돼. 엄마 방금 전에 우유도 마셨고 밥도 먹었어. 엄마는 대여섯번 더 이야기하다 포기하고는 갑자기 화장실에 간다. 혹시나 싶어 용변을 확인하고 속옷을 갈아입힌다. 엄마 발끼웠으니까 옷 끝까지 입어보자. 입을 수 있잖아. 엄마도 애를 쓴다. 내가 꿰어준 바지를 두 손으로 잡아 당겨 끝까지 입는 걸 확인한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빠에게 묻는다. 여기 앉아 있으면 돼요? 그래. 아빠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티비에만 열중한다. 이삼분도 안 되어 엄마는 다시 묻는다. 여기 앉아 있어요? 선생님의 허락을 기다리는 유치원생처럼. 아빠가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엄마는 초조해져 다시 묻는다. 여기 앉아 있어요? 짜증섞인 아빠의 대답. 앉아있으라고. 엄마는 눈치를 보며 말한다. 여기 앉아있을게요. 엄마, 허락받을 필요 없어.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 여기 앉아있을게. 알겠어. 엄마는 가만히 앉아있다. 초점없는 눈은 금세 허공을 미끄러지며 초조해한다.


2.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의 의식은 어디에 있을까. 엄마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자각한다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이렇게 계속해서 의식이 희미해지고 육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실버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르던 걸 자랑스러워하던 엄마. 성경을 암송하고 시를 쓰던 엄마. 아름다운 걸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화사하게 활짝 웃던 엄마.

알고 있다. 엄마는 다만 예정대로 상태가 악화되어온 것 뿐임을. 이 고통을 정작 엄마 본인은 알지 못할 것임을.어쩌면 그것이 다행일 수도 있음을. 차분하고 차갑게 이야기하던 의사의 말과 다름없이. 그러나 나는 이 과정을 받아들여야함을 알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고통에 빠진다. 죽음의 과정을 아주 천천히 보고 있음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낄 때마다.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을 것을 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죽음을 늘 자각하며 사는 게 아님에도 죽음이 우리의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묻고야 만다.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식이 서서히 죽어가는 이런 과정과 다른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무얼 선택할까? 나는 이미 나의 답을 알고 있다. 나는 절대로 이런 과정을 택하지 않으리라. 기어이 내 마음은 답을 하고야 만다. 나는 절대로 이런 과정을 선택하지 않으리라고. 이런 나의 대답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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