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제옷에 대한 나의 사랑에 누군가 적어주신 댓글에 몹시 기뻤다. 화답하듯 댓글을 쓰고 곧이어 구제옷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바빴다. 몸도 마음도. 새 해가 시작되자마자 제안서 하나, 작은 벽면 전시 하나, 작은 도록에 해당하는 공보물까지 만들고 나니 벌써 4월이다. 코로나 와중에도 밤낮없이 매진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봄이 오고 꽃이 핀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따스해진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마음이 두둥실 부풀어오를 정도로 포근한 공기.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될 일,
옷을 정리할 시간이 왔다. :)
2. 간절기가 되면 나는 의식을 치르듯 옷정리에 나선다. 봄에는 가을겨울에 입었던 옷들을 돌아보고 내년에도 입을 것들은 빨고 널고 말리고 보관용 옷장 속으로. 꺼내 두었지만 손이 가지 않던 것들, 아무래도 지니고 있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모아서 다시 분류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면 기증을, 낡고 헤져서 누구도 입기 어렵다면 옷 재활용 수거통으로 혹은 쓰레기통으로.
그리고 보관용 옷장에 있던 봄에서 여름까지 입을 옷들을 꺼낸다. 역시 정리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관해두었지만 아무래도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모아서 다시 분류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입을 수 있다면 기증을, 아무래도 다른 이에게 권하기 어렵다면 옷 재활용 수거통으로.
(갑자기 옆길로 새면 나에게 필요 없는 옷들이 제법 모이면, 봄에 막 열리는 뚝섬의 아름다운 장터에 가서 주말을 즐기곤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직접 사람들과 일이천 원을 두고 흥정을 하며 다른 이들의 취향을 구경하는 것도 봄날의 한강도, 다양한 간식거리도 소소한 재미였는데 코로나가 지나고 가을에는 즐길 수 있기를.)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어떻게 매치해서 입어야지 머릿속을 그림을 그리게 된다. 더불어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본적인 아이템이나 요즘 유행에 맞게 사고 싶은 아이템이 생긴다.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순간! :)
3. 올해는, 오늘부터 겨울옷 정리를 하려고 한다. 정리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내가 어떤 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올 겨울 가장 애용했던 아이템은 구제 무스탕이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양가죽 리얼 레더로 만듦새가 꽤 무겁고 꽤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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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 외투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인데 무겁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이 양털 무스탕만큼 따뜻한 옷이 없었다. 환경이나 동물보호를 위해서라도 가짜 가죽, 대안 퍼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구제시장에 있다면 낡은 옷이라도 사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동묘 2층의 구제 가게에서 발견해서 어찌나 기뻤는지.
목덜미를 충분히 감싸주는 버클, 넉넉한 품과 소매, 단순한 디테일과 크고 단단한 금속소재. 낡아서 군데군데 닳아가는 소매조차 마음에 들었다.
겨울 외투는 여름 외투든 여성복보다는 남성복에 가까운 단순하고 거친 스타일을 선호한다. 의외로 들리겠지만 단순하고 시원시원한 디테일이 어떤 옷과도 매치가 잘 되고 특히 여성스러운 옷과도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겨울에는 특히 풍성한 구제 스웨터를 자주 입기에 풍성한 소매가 촌스러운 80년대 스타일이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덧붙여 팁을 이야기하면, 나는 이 무스탕을 여름 끝에 5만 원에 샀다. 한 여름에 한 겨울 아이템을 샀기에 흥정 끝에 가격을 내려준 것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반대 계절, 혹은 지나버린 계절의 옷을 구매하면 가격이 훨씬 저렴해지고 흥정도 쉬워진다.
지난겨울 내내, 아마도 일주일에 사오일은, 이 옷과 함께 했다. 다시 봐도 마음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해 준다. :) 먼지를 잘 털어내고 털도 잘 쓸어주고 냄새도 빼주고 보관용 옷장에 넣어둬야지. 고마워. 다음 겨울에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