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박질

3장. 확인

by 문성 Moon song Kim

5.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털고 허리를 펴자 그는 이미 돌아서 걷고 있었다.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내려갔다. 언덕 아래 우리가 서 있던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사람들의 행렬은 흔적도 없었다. 사람들 대신 어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로수를 지나 어둠 속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가 발을 멈추고 내 쪽으로 돌아섰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보지 말자. 넌 네 길로, 난 내 길로 가는 거다.”


한결 담담해진 말투였지만 차갑기는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를 쳐다봤다. 담담하게 보이고라도 싶었다. 그보다도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잠깐 시선이 맞닿았다가 비껴갔다. 그가 눈을 돌려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여기서 헤어지자.”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덧붙였다.


“서로 뒷모습 보지 말고 각자 갈 길로 가자. 잘 가라.”

“그래. 잘 가.”


그의 말대로 뒷모습을 보기 전에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돌아서기도 전에 그가 돌아서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종국에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게 될지도 몰랐다.


내리막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길이 가팔랐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안 그래도 희미한 불빛이 자꾸만 부옇게 번져 이지러졌다.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자꾸만 들어차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발을 내디뎠다. 몇 걸음 채 딛기도 전에 발끝이 무언가에 걸려 몸이 앞으로 기우뚱하고 쏠리더니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가로등 불빛이 섬광처럼 스치고 곧바로 아스팔트 바닥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집압등불.jpg


팔다리가 얼얼했다. 얼얼함 끝에 쓰라림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맞닿은 아스팔트가 끈적하면서도 시원한 게 아무래도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뒤늦게 팔꿈치도 무릎도 시큰거리고 있었다.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대로 엎어져 있다가 느릿느릿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그제야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는 파이프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쌓아둔 파이프 더미 끝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그 뒤에 공사 중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서 있었다. 모퉁이에 있는 작은 연못이 공사 중인 듯했다. 가로수 너머 연못이 파헤쳐져 있었다. 흐릿한 불빛 아래 물이 빠진 연못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이는 거라곤 시커먼 진창뿐이었다.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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