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겨울

5장. 불면증

by 문성 Moon song Kim

1. 굉음이 울렸다. 천둥소리 같았다. 간밤에 잠들기 전에도 세차게 비가 내렸다. 잠결에 언뜻 번개가 번쩍였던 것도 같았다. 잠깐의 판단 끝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드는데 굉음이 끝나지 않고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윙윙대고 있었다. 천둥이 아니라 청소기가 울리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거울을 보며 대충 머리를 빗고 눈곱을 뗀 다음 의자에 걸어 놓은 옷과 가방을 그대로 걸쳤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방에서 나와 청소에 여념이 없는 엄마를 재빨리 지나쳤다. 부엌 찬장에서 식빵 한쪽을 꺼내 물고 “잘 다녀와라” 쳐다보지도 않고 건네는 무심한 인사에 “다녀올게요” 역시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꾸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어제와 사뭇 다른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서둘러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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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렸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 아직 구름이 가득했다. 내려앉을 듯 낮게 깔린 구름 아래 늘어선 집들이 버거워 보였다. 모퉁이 담벼락을 덮고 있었던 담쟁이넝쿨 이파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아 짙은 회색 담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큰길로 접어들자 역시 가지만 남은 가로수가 보였다. 비에 젖어 검은 줄기들이 나무가 아니라 아스팔트 바닥의 일부가 솟아난 것처럼 칙칙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길바닥에 쌓인 낙엽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에 젖고 사람들에게 밟혀 짓이겨져 제 빛깔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루 만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겨울이 닥치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어리다가 사라졌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춰도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자꾸만 옷을 비집고 파고들어 어깨를 오그라뜨리고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거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하나둘 제 갈 곳을 찾아 사라지고 나 하나만 남았지만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쉬지 않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추위에 쫓기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녹초가 돼 있었다. 발을 떼는 것도 버거워 질질 끌다시피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불을 켜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이부자리로 직행했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에는 벌써 아침이었다. 이부자리에서 일으키기도 무거운 몸을 끌고 다시 거리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위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가족 모두 내가 여전히 도서관이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비추기만 하면 속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빠와 언니가 출근하고 엄마가 설거지하는 걸 기다렸다가 방에서 나왔다. 나갈 채비를 하듯이 분주히 세수하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으며 눈치를 보는 사이 엄마도 식탁을 치우고 나가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대로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엄마가 돌아올 즈음 나와서는 그제야 막 집에 돌아온 것처럼 엄마 앞을 얼쩡거리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보니 실은 그것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집안일을 끝내고 서둘러 외출했다. 구역예배며 심방이며 갖가지 교회 일을 하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아니면 저녁예배까지 드리고 저녁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아빠하고 언니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라 집에 있는 시간 자체가 적었다. 다들 각자 일과에 바빠 일부러 기다려야만 간신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굳이 속이지 않아도 피하기만 하면 내가 하루 종일 방안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날이 밝아도 커튼을 열지 않았고 날이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았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귀찮았다. 이불속에 웅크리고 누워 있노라면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이 된 것 같았다. 내 방은 작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이따금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걸 제외하고는 먼지도 가라앉아 숨을 죽였다.


하루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어제가 있었는지 가물가물했고 내일이 오기는 할지 의심스러웠다. 어제도 내일도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마디마디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끊어진 마디와 마디 사이에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어제를 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내일을 계획하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루를 소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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