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구석

5장. 불면증

by 문성 Moon 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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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삐오삐오삐오삐오. 날카롭고 다급한 소리가 주의를 흩뜨렸다.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구급차인지 소방차인지 가까워질 듯 멀어지며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운을 남길 새도 없이 사라졌다. 툭. 투둑. 투두둑. 이번에는 창가에서 또 다른 소리가 이어졌다. 무언가를 끌어다 던지고 있었다. 청소부 아저씨가 쓰레기를 치우는 듯했다. 비닐봉지가 부딪히며 바스락거리다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잦아들었다. 정적이 찾아왔다.


거실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들 자는 모양이었다. 벽에 붙은 시계를 올려다봤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짧은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시곗바늘을 확인한 순간 거짓말처럼 시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소리에 맞춰 가슴이 뛰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쾅거리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탁자를 훑어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원 버튼부터 누르고는 엉거주춤 소파에 걸터앉았다. 화면이 번쩍 빛을 발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화면 속의 장면을 그 속의 사람들을 그리고 글자들을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좇고 있었다. 채널을 돌렸다.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움츠렸다. 채널을 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눈이 미처 화면을 따라가지 못해서 화면이 바뀔 때마다 잔상이 화면에 겹쳐지고 색깔과 형태가 어지럽게 얽혀 들었다. 눈이 시큰거렸다. 저절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고개를 쳐들고 눈을 깜박여 눈물이 넘치지 않도록 꾹꾹 눌렀다. 천장에 알록달록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TV의 불빛이 천장까지 비추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닫힌 안방문 손잡이의 금속이 희미하게 빛났다. 부엌에 식탁과 식탁을 둘러싼 의자들이 어둠 속에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거실 바닥 장판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TV 화면이 바뀔 때마다 불빛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소파 옆 장식장에 TV 화면 속 축구경기가 그대로 반사되고 있었다. 선수들이 공을 향해 달리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들여다보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는 없었다.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해도 그건 내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골몰해봤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내 자리로 돌아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를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도 혼자라는 건 잊을 수 없었다.


TV를 껐다. 순식간에 어둠 속에 갇혔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닫힌 방문이 부엌의 식탁과 의자들이 소파 옆 장식장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점점 거대해져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바닥을 기다시피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숨겼다.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나라는 게 싫었다. 내가 아닐 수만 있다면 이불속 먼지라도 되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바라고 있었다. 눈을 뜨고 나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리라는 게 몸서리쳐졌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이불을 헤집었다. 째깍째깍째깍. 귓바퀴를 목구멍을 가슴속 깊은 어딘가를 찔러댔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도망칠 구석을 찾아야 했다.


핸드폰. 핸드폰이 떠오르자마자 눈을 떴다. 허우적거리며 이불을 걷어치우고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에 내팽개쳤는지도 잊어버린 쓸모없는 기계가 탈출구가 될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누구에게든 닿을 수 있을 터였다.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손에 쥐고 싶었다. 반대편의 그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손에 쥐고 나면 이 숨 막히는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원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나를 끌어내 줄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빠른 방법 같았다.


이부자리 옆에 쌓여 있는 옷가지를 손에 잡히는 대로 이불 위로 집어던졌다. 방바닥이 드러나자 바닥에 엎드려 두 팔을 휘저어댔다. 걸리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잡아당기자 끈이 뒤엉킨 가방 몇 개가 책상 밑에서 딸려 나오면서 책상에 대충 걸쳐 놓은 코트와 잡동사니들까지도 한꺼번에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것들도 마저 이불 위로 던지고 일어나 불을 켰다.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과 노트, 프린트를 들춰보고 화장대 위의 물건들도 들춰봤다. 설마 하면서도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고 책상 서랍을 열어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옷장 서랍들까지 하나하나 열어봤다. 방안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을 헤집고 또 헤집었다. 핸드폰을 찾지 못하면 이 작은 카오스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불 위에 책상 높이만큼 쌓아 올린 옷가지를 두 번이나 뒤엎고 옷에 달린 주머니들도 뒤져본 뒤에야 가방 속을 확인해 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를 찾아가던 날 검은색 가죽 숄더백을 맸었다. 방바닥에 꺼내놓은 가방들을 돌아봤다. 제일 아래 그 가방이 깔려 있었다. 군데군데 긁히고 진흙이 말라붙은 위로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수첩, 필통, 화장품 파우치와 지저분한 휴지뭉치 사이에서 정말로 핸드폰이 나타나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충전기에 연결하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도 과연 켜지긴 할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고장이라도 나서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우가 어쩐지 당연하게 여겨졌다. 핸드폰은 나를 비웃듯 일초도 안 돼서 화면에 불이 켜졌다. 쉬지 않고 깜빡이며 새로운 문자메시지들로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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