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8장. 어긋남

by 문성 Moon song Kim

4. 현실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학교 앞으로 찾아가 술 마시는 일을 그만두지도 못했고 그와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을 피하지도 못했다. 먹자골목 앞에서 약속한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보았다. 술집에 들어서다가 구석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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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틈에 보이는 손톱만 한 뒤통수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고야 말았다. 내 눈이 언제나 그를 찾고 있었다. 혹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는 번번이 나를 외면하고 나는 번번이 외면하지 못하고 그를 좇았다. 온몸의 신경이 그에게로만 향하고 있었다.


그가 미웠다. 아니 밉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가 증오스러웠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원망이 끓어올랐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헤어지자는 이유를 묻자 그게 중요하냐고 되묻던 그를. 왜라는 질문 따위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는 다만 마음 가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의 변심 앞에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던 우리 사이는 언제든 끝내자고 선언하면 그만인 사이로 전락했다. 그에겐 취향에 따른 선택이었던 게 내겐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되고 말았다.


그는 제멋대로인 어린아이였다. 흥미를 잃은 장난감을 내던지듯 나를 내던졌다. 아니 그는 제멋대로인 신이었다. 영원히 사랑을 베풀 것처럼 다정히 손을 내밀었다가 매몰차게 내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에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 존재를 쥐고 흔드는 잔인한 신이었다. 아니라면 그럴 수 없었다.


그도 나와 똑같이 첫 연애에 실패한 스물둘 남자애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싶어도 그렇게 여겨지질 않았다. 헤어지자고 말하기까지 그 혼자 감내해온 것이 있었으리라고 그 역시 괴로웠으리라고 상상하고 싶어도 상상이 되질 않았다. 깨지고 만 우리 사이가 그의 손만이 아니라 내 손에도 달려있었으니 절반은 내 책임이라고 받아들이려 해도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내가 죽도록 노력했다 한들 그의 마음에 미치지 못했으리라고 그렇게 밖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걸 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었다. 우리의 파국도, 그를 놓지 못하는 나도, 자포자기에 이른 하루 하루까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도 그의 몫으로 넘겨버리고 싶었다. 모두 그의 탓이라 뒤집어씌우고 싶었다. 이 모든 게 그가 제멋대로인 탓이라고 자기밖에 모르는 탓이라고 차갑고 잔인한 탓이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길바닥에 나뒹굴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와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새록새록 미움이 솟구쳤다. 날 보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그 눈빛이 미웠다. 나를 외면하고야 마는 그 얼굴이 미치도록 미웠다.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돌아서는 그 모습이 죽도록 미웠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사라지고도 미움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 어느 결에 나를 집어삼켰다. 눈앞에 있는 것들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조여들고 조여들어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얼어붙어 몸을 떨고 있었다. 맹렬하게 날뛰는 그 기세에 그저 휩쓸리고 있었다. 내 안에서 생겨난 것인데도 내 것이 아니라 제 의지를 가진 별개의 생명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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