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

9장. 망상

by 문성 Moon song Kim

5. 말투만으로도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게 전해졌지만 고맙지도 위안이 되지도 않았다. 이제야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이해할 수 없어서 그와 함께했던 걸까.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와 함께해야만 했던 걸까. 말할 시기를 놓치면서까지 꼭 그와 함께해야만 했던 걸까.


그에게도 화가 치밀었다. 내게는 눈길 한 번 허락하지 않았으면서 이들은 괜찮았던 걸까. 미정이가 나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둘이 함께해야만 했던 걸까. 내가 없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꼭 그래야만 했던 걸까.


“인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진 않아?”


미친 듯이 돌아가던 머리가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미정이와 눈이 마주쳤다.


“궁금해.”


반응하지 못하는 머릴 제치고 입이 대답했다. 내가 뱉어놓고도 기가 막혔다. 이런 순간조차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 질리고 있었다. 진저리가 쳐졌다.


“인우는, 요즘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사교적으로 변했다고 해야 하나……, 달라졌더라. 전보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 같아. 예전에는 너하고 아니면 혼자였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항상 사람들 속에 있더라. 한 집에 살아서 그런지 정수나 진욱이하고도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하고 같이 수업 듣는 동기들이나 후배들하고도 어울려 다니더라고. 걔가 그렇게 사람들 속에 있는 걸 보니까 너 생각나서 속상하더라. 난, 너희가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다시 잘 지낼 줄 알았어. 너희 둘 사귀기 이전에 제일 가까운 친구였잖아.”


그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없었더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라는 그 말은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던 걸까. 날 배려라도 하듯 돌아서서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없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걸까.


“이것도 이야기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했는데……, 실은 인우도 물어봤어, 너 잘 지내고 있냐고. 얼마 전에 스터디 뒤풀이하면서 술을 좀 많이 마셨는데 그때 물어보더라. 곧 뻗어버려서 자기가 물어본 걸 기억하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냐고 했더니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미정이 입으로 다시 한번 통보하고 있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단정했었다. 뇌리에 박혀 있던 그 순간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래도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냐고 연락해보지 그러냐고 했는데, 다음은 나도 잘 기억이 안 나. 취해서. 너희가 서로한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네 옆에도 인우 옆에도 너희 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상상이 안 되는데…….”


미정이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한결같이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가 증오스러웠다.


눈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티가 나기 전에 눈을 깜박였다. 눈물이 넘쳐흐르지 못하게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미정이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심정을 헤아리느라 지금껏 나를 지켜보면서도 굳이 그와의 일을 알리지 않았던 걸까. 날 생각해주느라 그에게 나에 대해 물었던 걸까. 정말 우리 관계를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이 나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가깝다는 게 나를 더욱더 비참하게 했다. 내가 미정이와 그의 관계를 엿보고 있는 꼴이었다. 어쩌면 내게 이야기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 더 깊은 대화가 오갔던 건 아닐까.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건 아닐까. 망상에 망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P1010139.JPG


나도 모르게 미정이를 살폈다. 미정이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미정이와 또 한 번 눈이 마주쳤다. 미정이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혐오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저질인 내가 구역질 났다. 차마 더는 미정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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