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구경하듯

11장. 길 위에서

by 문성 Moon song Kim

1. 가방이 무거워 몸이 앞으로 쏠리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게가 더해지고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속초행 버스에 오를 때까지 겨우 한 시간 남짓 지났는데 어깨가 빠개질 것 같이 아파 구부린 등을 펼 수 없었다. 버스에 앉아 가방을 풀어헤치고 뺄 만한 물건을 골라봤지만 아무것도 빼지 못했다. 무얼 빼야 할지도 몰랐다. 배낭여행에 필요하다는 것들만 최소한으로 꾸린 짐이었다.

속초에 내려 국제여객터미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도에 나온 대로 시내를 따라 걷다 보니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국제여객터미널이라 적힌 커다란 간판을 못 본 척하고 싶어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아 저 혼자 뽐내듯 서 있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 때문인지 다른 건물들이 더욱 납작하고 볼품없이 보였다.

터미널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적하던 거리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든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이든 모두가 내 것보다 커다란 짐을 이고 지고 끌고 와서는 다시 터미널 안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쭈뼛쭈뼛 그들을 따라 터미널 안으로 들어섰다.

터미널 안은 시장바닥 아닌 시장바닥이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가방을 쌓아두고 주저앉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출국 수속대를 찾아 사람들을 헤치고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한국어에서 러시아어로 중국어로 다시 한국어로 바뀌고 뒤섞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싸구려 카피 제품이라는 게 드러나는 조잡한 브랜드 로고가 박혀있거나 낡고 닳은 허름한 옷차림들뿐이었다. 무심코 마주치는 얼굴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메고 있던 가방끈을 움켜쥐고 사람들을 지나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줄 끝에 섰다.

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잰걸음으로 앞사람을 따라가다가 출국 수속대 앞에 서서야 허둥지둥 가방을 뒤져 여권을 내밀고 출국 도장이 찍힌 여권을 받아 들고는 뒷사람에게 떠밀려 또다시 허둥지둥 출국장을 통과해서 배에 올랐다. 입구에 있던 승무원이 여권과 표를 확인하고 벽에 붙은 3등실 화살표를 가리켰다. 화살표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놓칠세라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쫓아갔다.

좁은 통로를 돌고 돌아서야 나타난 삼 등실은 아까 사람들이 주저앉아 있던 터미널 바닥보다도 지저분했다. 익숙한 듯 한쪽에 쌓여 있던 매트를 바닥에 깔고 앉아 짐을 푸는 사람들 속에 멀뚱멀뚱 서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자꾸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걸음을 옮기다 보니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이었다.

갑판에 오르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역한 석유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육중한 쇳덩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선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봐도 배가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올라서자 그제야 갑판 끝자락에 아스라이 잿빛 수평선이 보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가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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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까지 10분 남았으니 서둘러 승선하시기 바랍니다.” 출발을 알리는 방송에 이어 빠아아 앙 묵직한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려운 건지 설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오는 것 같아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찬 건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내 몸뚱이마저 낯설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정수리 위에 떨어졌다. 놀라서 머리를 더듬는 손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객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차지하고 남은 구석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저녁식사를 알리는 선내 방송을 듣고서야 점심도 걸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당에 가서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객실에 불이 꺼지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다들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 딱 하나 비어 있는 매트 위에 가방을 베고 몸을 누였다. 말소리도 잦아들고 엔진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나니 진동이 느껴졌다. 배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배 속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아침을 맞을 즈음에는 옆자리에서 돌아눕는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자 날이 바짝 서서 잠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30분 후면 훈춘 항에 도착하오니 내리실 분들은…….” 경유지를 알리는 방송을 듣고 일어나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는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 드디어 자루비노 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짐을 챙겨 들고 갑판으로 나왔다. 다른 이들도 일찌감치 나와서 배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서 떠밀리다시피 배에서 내려 떠밀리다시피 입국 구속장으로 들어섰다.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고 입국 수속 줄에 서는 것까지는 앞뒤를 힐끔거리며 눈치껏 해냈지만 내 여권을 흔들어대며 쉴 새 없이 떠드는 입국 수속 담당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알 수 없는 러시아어 사이사이 들리는 ‘딸라’라는 단어에 혹시나 하고 지갑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자 얼른 뺏어 들고 입국도장을 찍더니 번쩍거리는 금니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어 보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뒷사람이 나를 밀치고 자기 여권을 내밀었다. 다시 가방을 끌어안고 입국 수속대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붙잡고 ‘블라디보스톡’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물어물어 버스정류장을 찾고 요금을 지불하고 블라디보스톡행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도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버스가 항구를 떠나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버스는 도로를 달린다기보다는 진흙길을 달린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잠시라도 편안하게 앉아 있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듯 쉬지 않고 덜컹거렸다. 차창으로 나뭇가지들이 꺾일 듯 부딪치며 스쳐갔다. 언뜻 안개가 자욱한 숲 속을 달리는 듯했지만 차창에 김이 서려 확인을 할 수는 없었다.

“블라디보스똑.” 나를 돌아보며 중얼거리는 기사의 목소리가 내 귀에 대고 외친 듯 또렷하게 들렸다. 가방을 끌어안은 채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리자 어두운 거리에 불을 밝힌 건물 옆으로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낯선 풍경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한편에 무리 지어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팔을 끌고 옷을 잡아당기며 “딱시”를 외쳤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당장이라도 나를 덮쳐 빽빽한 건물들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너머 짙은 어둠 속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가방을 움켜쥐고 고개를 쳐들었다. “키타이스키”, “야뽄스키” 달려들어 말을 거는 사람들을 제치고 “할로, 웨어” 그나마 몇 마디 영어를 외치는 이에게 다가갔다. 태연한 척 가이드북에 적어둔 민박집 주소를 보여주고 얼마를 내야 하는지 서투른 흥정까지 하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고 있는 내내 가방을 껴안고 기사 눈치만 보다가 차가 멈추자마자 튕겨 나오듯 내려 계산을 하고는 무턱대고 눈앞에 있는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청소하다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아주머니에게 다짜고짜 방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다행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러시아어로 대답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한두 마디 서툰 한국말을 섞어가며 안내를 해주는 아주머니를 따라 삐걱대는 계단을 올라가 제일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열쇠를 받았다.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방문을 닫고는 불은 켜지도 않고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둠 속에서도 높은 천장과 반질반질하게 닳은 마룻바닥이 보였다. 눅눅한 횟가루 냄새와 나무 냄새가 먼지와 뒤섞여 코를 간질였다. 엊그제 내 방에 누워 밤을 새우던 게 아주 오래전 일처럼 아련했다. 방금 전 택시에서 내려 방을 구하러 뛰어든 것도 까마득했다. 낯설기만 한 이 모든 일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듯했다. 남의 일 구경하듯. 침대 두 개만 놓인 텅 빈 방 안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이 순간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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