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길 위에서
2.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둡지도 않았지만 밝지도 않았다. 머리맡에서 흐릿하게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반쯤 열린 방문이 보였다. 맞은편에 비어 있던 침대에도 바닥에도 짐이 널려 있었다. 내 배낭의 족히 두 배는 되는 듯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쳐다보다가 “하이” 기운찬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활짝 웃으며 맞은편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스럼없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밤중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며 언제 여기에 왔느냐고 물었다. 얼결에 “예스터데이”라고 답하자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에서 왔느냐, 여기에는 얼마나 있느냐, 어디까지 가느냐, 질문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속사포 같은 속도에 말문이 막혔다.
여자가 눈치를 챘는지 천천히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은 로템이고 미국에서 왔다고 친구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계획이라고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활짝 웃었다. 기대에 찬 그녀의 얼굴이 눈부셨다. 내 얼굴은 굳고 있었다. 더듬더듬 한국에서 왔고 가능한 한 멀리 가능한 한 오래 여행할 계획이라 답하면서도 “쿨”이라 외치는 그녀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노크소리가 들렸다. 방문 앞에 역시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함께 온 친구인 듯 내게 살짝 눈인사하고는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영어라 해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내심 다행이라 여기는데 로템이 나를 쳐다보며 다시 속도를 늦춰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이 오즈라고 소개하더니 자기들은 배가 고프다고 조금 이르지만 같이 아침을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어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거절해야 했다. 끝까지 상냥하게 웃어 보이며 방을 나서는 그들이 끝까지 불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잠도 오지 않는데 그대로 누워서 미적거리고 있다가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나왔다. 빨래 거리를 들고 지나치는 아주머니에게 식당을 묻자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한국어로 떠들어대는 목소리들이 요란하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멈췄다. 내게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중년 남자 서너 명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끗거리다가 이내 자기들끼리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온 아주머니에게 식사를 부탁하고 그 사람들을 피해 식탁 끄트머리에 앉았다.
“아가씨, 한국사람 아니야?” “맞나?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은데 뭘, 그치?” 집요한 관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아가씨 혼자 왔어?” “혼자 왔으니까 혼자 밥 먹겠지.” “여행 왔어?” “유학생 아니야?” “유학생이면 여기 묵겠나, 이 양반아.” “아니, 아가씨 정말 혼자 여행 온 거야?” 또 한 번 마지못해 끄덕였다. “허허, 거참, 대단하네.” “에이 혼자 와서 제대로 구경이나 할 수 있겠어? 우리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면 또 몰라도.” “하긴 여기가 어떤 덴데.” 아주머니가 다가와 오믈렛과 토스트를 놓고 갈 때까지도 자기들끼리 주고받고 있었다.
“아가씨, 우리도 오늘 시장 가서 물건 좀 떼고 관광하러 갈 건데, 같이 가지 그래?” “우리 따라다니면 신기한 거 많이 볼 수 있어, 북한 식당 가봤어, 북한 식당?” “아, 킹크랩 정도는 먹으러 가야지, 숙녀를 모시려면.” “그래, 킹크랩 맛있지, 킹크랩은 먹어봤어?” 내가 식사를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맛이 어떤지 느끼지도 못하고 오믈렛을 씹었다. “이 아가씨가 따라오면 내가 킹크랩 산다.” “아, 그럼 아가씨가 꼭 가줘야겠네.” “어떻게, 같이 갈 거지?” 남은 토스트 두 쪽을 들고 일어섰다. 나를 쳐다보는 이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식당을 나와 버렸다.
“허허, 계속 혼자 다닐 건가 보네. 저 아가씨 깡이 세구만 그래.” “어디 얼마나 잘 알아서 다니려고 그러나, 젊은 여자 혼자서.” “경찰한테 붙들려서 돈 좀 뜯겨봐야 무서운 줄 알겠지, 뭐.” 복도를 지나 계단을 다 올라오고 나서야 나를 찧고 빻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영어로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아까 그 미국인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 눈인사를 주고받고는 또다시 말을 걸기 전에 얼른 짐을 챙겨 들고 나왔다. 아주머니에게 가방을 맡기고 민박집에서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떠나와서도 사람들과 부대끼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와 보니 그걸 몰랐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몰랐다. 이곳이 아무리 낯선 곳이라 해도 이곳에도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있는 한 사람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행객들끼리는 숙소 때문에라도 더 자주 더 가까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여기까지 와서도, 그 어디에서도, 사람들과 부딪혀야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한 명씩 나를 지나칠 때마다 부딪칠까 봐 저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한쪽 구석에 비켜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저쪽 모퉁이에 민박집이 보였다. 나는 민박집이 있는 블록을 지나 큰길과 만나는 교차로에 서 있었다. 도로에 늘어선 차들이 태연하게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향해 위협하듯 빵빵거렸다. 사람들이 도로에서 발을 떼기가 무섭게 달리며 매연을 뿜었다. 새카만 먼지와 지독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 속을 걷고 있었다.
다시 발을 옮겼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걷는 틈틈이 지나온 건물과 간판을 외웠지만 몇 블록 지나고 나자 말짱 헛일이 되고 말았다. 아까 본 것과 똑같은 신문가판대를 보고는 뒤돌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도 읽을 수 없는 간판들도 아까하고 구분이 가질 않았다. 다급히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도 한 블록이 끝날 때마다 서너 갈래로 갈라지는 길 앞에서 머뭇거렸다. 어느 길로 들어서든 무표정한 사람들과 빵빵대는 차들 사이를 헤매야 했다. 차들이 움직일 때마다 매연을 뿜어대고 매연이 그대로 공기 속에 배어들어 숨통을 막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민박집이 있는 블록으로 이어지는 교차로를 찾아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끌고 처음 멈췄던 자리에 섰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어스름 속에서도 여전히 복잡한 도로에는 차들이 빵빵대고 비좁은 인도에는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모퉁이 건물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표정한 얼굴이 더욱 도드라졌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더 무표정했다. 시선이 내 쪽을 향하면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급기야는 누가 나를 잡아챌까 뛰다시피 민박집으로 향했다. 헐떡거리며 방으로 뛰어들어 침대 속에 몸을 숨겼다.
날마다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서둘러 채비를 하고 민박집을 나선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프면 가게를 찾아 눈치껏 빵이나 과자 따위를 사서 들고 다니며 먹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질질 끌고 다니기도 버거울 정도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누워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당연히 혼자였다. 아침 일찍 옆자리에 기척이 들리지 않게 빠져나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또다시 기척을 들킬 새라 살금살금 숨어들었다. 민박집에서는 청소와 식사를 챙기는 고려인 아주머니와 밖에서는 빵이나 우유를 사는 가게 주인과 대화라고 하기도 뭣한 엉터리 의사소통을 하는 걸 제외하고는 누구 하고도 말을 섞지 않았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지레 고개부터 돌려 시선을 피했다.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는 충분했다. 먼저 피해버리고 나면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혼자가 되는 건 한국에서 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