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티끌

12장. 음미

by 문성 Moon song Kim

5. 날이 저물고 있었다. 태양이 짙게 깔린 먹구름 아래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 검은 강물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주위는 한없이 고요했다. 태양이 가라앉는 찰나 모든 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리에서 내려와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내에 접어들어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쳐다보는 눈길들을 느끼면서도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돼 흘러내려도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계속 걸었다. 예전 그 어느 날 그랬듯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방문부터 잠갔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었다. 누워서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씻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바라고나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쏴아아 쏟아지는 빗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비가 어제보다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추워서 견딜 수 없었다. 어제도 춥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숫제 계절이 바뀌어버린 듯했다. 겉옷까지 입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일어나서 있는 대로 옷을 꺼내 겹쳐 입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시리는 건지 쑤시는 건지 통증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똑똑 누군가 노크했다. 목소리를 낮춘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고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보려 하고 있었다. 방청소를 하려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방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문을 열어주고 싶어도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딸깍 소리가 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모든 게 아득해지고 있었다. 저녁인지 아침인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몰랐다.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도 몰랐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 내가 토해내는 입김이 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뜨거웠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있었다. 몸에 닿는 천의 감촉도 살을 에는 듯 쓰라렸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은 추위도 계속되고 있었다. 간간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억센 러시아어가 시끄러운 중국어로 바뀌었다가 속사포 같은 영어로 바뀌고 알 수 없는 또 다른 언어로 바뀌었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며 환청 같이 귓가를 떠돌고 있었다.


간신히 눈을 떴다. 어둠 속에 희끄무레하게 천장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희뿌연 회벽. 다시 눈을 감았다. 사방이 조용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게 이런 느낌인지도 몰랐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밖에 있는 그 누구도 내가 여기에 누워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정말 이대로 죽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뒤늦게 나를 발견할 테지. 내가 누구인지도 알 리 없으니 내 물건을 뒤져서 연락하겠지. 엄마 아빠가 찾아와 나를 데려가 이곳과 다를 바 없는 어딘가에 묻겠지. 가족에게 연락이 닿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럼 방치되어 있다가 역시 이곳과 다를 바 없는 여기 어딘가에 묻히겠지. 누가 관심을 가지기나 할까. 혹여나 운이 좋으면 아무도 읽지 않고 지나치는 한 줄짜리 신문 기사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 이미 겪은 것처럼 장면들이 하나하나 스쳐갔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이곳에 널브러져 있는 이 몸뚱이가 끝나면 이 망상도 끝나겠지. 이곳까지 끌고 와 놓지 못하고 있던 모든 게 끝나고 말겠지. 얼마나 하찮은 일이었나. 지금 이곳이 아니라 해도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날 일이었다. 어떻게든 죽게 될 터였다. 나라는 존재도 사라지고 저 밖의 사람들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공간도 사라지고 말 터였다. 사방이 막힌 작은 방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끝없이 막막한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광대한 우주 속에 아주 작은 티끌이 되어 떠돌고 있었다.


손을 뻗었다. 무엇이든 잡아보려고 팔을 내저었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한없이 가볍게 날아오르다가도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진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헷갈렸다. 의식조차 무뎌지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어렴풋이 체념하고 있었다.


눈을 떴다. 천장이 푸르스름한 회색에 가까웠다.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하얀 햇살이 어른거렸다. 눈을 끔벅이다가 흔들리는 햇살 조각을 좇았다. 밖에 바람이 부는지 이쪽으로 휩쓸렸다가 저쪽으로 휩쓸리고 또 처음 머물던 자리로 돌아와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지러워 눈을 감아버렸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베개가 젖어 있었다. 몸이 찌뿌드드하면서도 가벼웠다. 실컷 앓고 난 뒤에 맛볼 수 있는 그런 개운함이었다. 그대로 가만히 누워 개운함을 음미하는 사이 햇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와 나를 어루만졌다.


왜 그를 놓지 못하고 도망치고 도망쳐 여기까지 왔을까.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이 자리에 이르러서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남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를 만나고 또 헤어졌듯. 모두가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구도 차마 꺼내놓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품고만 있는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뒤늦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완전히 그를 놓았다고 확신할 수 없어도 상관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한 번 해보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조금 더 머무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더 이상 낯선 풍경 속을 헤매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눈을 떠 손목시계부터 확인했다. 시계가 9시를 알리고 있었다. 이틀을 누워서 보낸 셈이었다. 다행히 기차는 오후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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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정신을 좀 차린 뒤에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남아 있는 빵과 살구를 가지고 주방에 가서 뜨거운 차와 함께 먹고 돌아와 짐을 싸야지. 빨아야 할 옷들을 비닐봉지에 담고 풀어헤쳐놓은 물건들을 정리해서 가방을 꾸린 다음 이 방을 나서야지. 요금계산을 마무리하고 가이드북에 나온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 찾아가야지. 그곳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역으로 가서 기차를 기다려야지. 기차가 도착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기차에 올라야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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