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일상실험
1. 여름맞이 옷정리
4월 30일 부처님오신 날에 시작된 연휴는 살랑거리는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연일 기온이 오르더니 28도까지 오르는 무더위로 이어졌다. 봄이 여름으로 갈 채비를 하는 나날. 긴 연휴의 시작점에 나도 역시 여름을 채비했다. 방을 청소하고 이불과 베개, 시트를 햇살에 바싹 말린다. 늦겨울과 초봄부터 지금까지 입었던 옷들을 정리해서 빨고 널고 정리하고 늦봄과 여름에 입을 옷들을 꺼낸다. 매일같이 꺼내입기 편하도록 겉옷들, 바지들, 치마들, 윗옷들을 수납하며 아무래도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은 한쪽에 모아둔다. 다시 한번 체크해보고 차곡차곡 쇼핑백에 넣어두고 수납을 마무리한다. 오후에 시작한 빨래 겸 정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났지만 피곤함보다는 한 계절을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상쾌함이 더 큰 일종의 의식. :)
쇼핑백에 모아둔 온들은 옷수거함으로 갔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살랑거리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아름다운 장터나 지역 벼룩시장에서 나누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사진함을 뒤져 작년 벼룩시장 풍경을 찾아본다.
2. 작년 벼룩시장을 기억하며
지역의 벼룩시장도 재미있지만 단연 가장 큰 규모의 벼룩시장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장터, 뚝섬이다. 이른 아침 트렁크를 끌고 나타난 사람들은 각자의 보물부터 다 떨어진 인형까지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물건들을 펼쳐놓는다. 나 역시 그들 중 한명이 되어 내 물건들-주로 옷과 신발-을 펼쳐놓고 사람들을 맞는다. 만원, 오천원, 천원, 오백원, 심지어 백원까지 내려가는 흥정들 속에서 주고받는 재미.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옆사람에게 자리를 맡기고 주변에 늘어선 노점상의 먹거리로 배를 채우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듯 각각의 매대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물에 나 역시 득템을 하려 흥정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늦은 오후 장터가 슬슬 정리를 할 때즈음이면 떨이로라도 물건을 정리하고 싶은 셀러들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사고 싶은 바이어들이 또 한바탕 벼룩시장을 휩쓴다. 중국이나 동남아, 중동에서 온 이주민들도 역시 단골 바이어들로 간단한 한국어로 익숙하게 흥정을 하는 모습도 역시 또 하나의 재미.
3. 입지 않고 모셔두느니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이에게!
입지 않은 옷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그 옷을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더라.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내가 입을 수 있는 옷도 한정되어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 언젠가부터. 아마도 이십대후반이나 삼십으로 들어서던 전후였던 것 같다. 옷이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마음에 드는 옷 입었을 때 기분좋은 옷이 아니라면 활용하지 못한다고 죄책감을 갖고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는 건 일종의 낭비라는 걸 깨달으며 서서히 옷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정리하고 기증하는 게 일종의 계절을 맞이하는 의식이자 습관이 되었다. 특히나 벼룩시장은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갈때 그와 같은 의식을 좀 더 재미나게 사람들 속에서 치를 수 있는 일종의 축제. :)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작년같은 축제를 즐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소한 용돈벌이 겸 사람들과의 나눔을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대안, 네이버중고나라와 당근앱이 있긴 하다. 오랫동안 쓰지 않고 모셔두기만 했던 운동화 두 켤레와 타블렛은 온라인 벼룩시장을 통해서 각자의 주인을 찾아갔고 지난 몇년간 나와 함께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필요없는 치마와 티셔츠들은 동네의 옷기증함을 통해 다른 주인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