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일

14장. 어둠에 잠긴 풍경

by 문성 Moon song Kim

2.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지도 않은 채 이불 위에 누워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자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물을 묻히고 빗으면 되겠지 일어나지 않을 궁리나 하고 있었다. 불을 끄려고 몸을 일으키는 것도 귀찮아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설핏 잠들었다가 지이잉 진동이 울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정말로 진동이 울린 건가 싶어 손을 더듬어 이부자리 곁에 있던 핸드폰을 집었다.


“만날 생각 있으면 한 번 보자. 답 줘라.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되니까.” 모르는 번호였다. “잘못 보내신 것 같은데” 답문을 적다가 멈칫했다. 핸드폰 주소록에서 지혁 오빠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또다시 멈칫했다.


핸드폰을 쥐고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로그인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몇 차례 뜨고 나서야 비밀번호를 기억해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로그인했다. 학번 게시판으로 들어가자 근 몇 달 동안 읽지 않은 새 글이 쌓여 있었다. 제목을 훑어 연락처 목록이 있는 글을 찾아 클릭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 전화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다가 마우스 휠을 멈췄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그의 번호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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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알리는 알람에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고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학교로 향하는 내내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고르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그에게 답문을 보내고 수업 중에 문자를 주고받으며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앉아 밥알을 씹다가도 과연 그를 만나는 게 맞을까 반문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강의실을 나섰다.


해가 졌는데도 제법 더웠다. 5월 초 답지 않은 여름 날씨였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땅이 아니라 허공을 걷는 듯 어지러웠다. 허우적허우적 정문을 지나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건너편 먹자골목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가 보였다. 사람들 속에 우두커니 서서 먼발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야윈 얼굴이 다른 사람처럼 낯설었지만 조금 구부정한 어깨에 바지에 찔러 넣은 손은 틀림없이 그가 맞았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보였다. 눈이 마주치기 전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그가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섰다. 성큼성큼 먹자골목으로 들어가 음식점 몇 개를 지나치더니 호프집 앞에 멈춰서 나를 힐끗 돌아보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를 따라 호프집구석자리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자 그가 메뉴판을 열어보지도 않고 맥주 두 잔과 안주를 하나 시키며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업원이 주문한 걸 테이블에 내려놓고 갈 때까지 우리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학기인가? 한 학기 더 남았던가?”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정한 거야? 대학원? 아니면 취업?”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긴 여름방학도 있으니까. 그래도 빨리 정하는 게 낫지 않나.”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가 싶더니 그가 흠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그만 불편하게 지내자.”


내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테이블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 지내보자. 다른 동기들처럼. 그 얘기하려고 보자고 했어.”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 그러자.”


그는 내 대답에도 나를 보지 않고 맥주잔만 만지작거렸다. 기어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째서인지 몰랐다. 그가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쳤다. 뒤늦게 잔을 드는 그에게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며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안부도 주고받고 오늘처럼 만나면 한 잔 하기도 하고, 뭐, 그러자는 거지?”

“그래.”


그가 짤막하게 답했다.


“근데 이제는 이렇게 보는 것도 어렵더라. 다들 바빠서.”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치며 그의 말을 받았다.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내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면 군바리 전화라 그런 건가.”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농담이 맞는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잠깐 사이를 두고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미정이도 전화 안 받던데 미정이 전화번호 바뀌었나?”


그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그 얼굴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얼 바라고 만나자고 한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대학원 때문에 이것저것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가 전화해서 안 받는 건가.”

“안 바뀌었을 거야. 내가 알기론. 사정이 있었겠지. 다시 전화해봐. 반가워하겠지.”


최대한 무심하게 이야기하려고 애를 썼다. 목소리가 흔들리는 걸 감추려다 보니 말이 빨라졌다. 말을 끝내자마자 목이 마른 척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을 흐르는 노래가 서너 곡쯤 바뀔 때까지 우리는 또다시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맥주잔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할 얘기는 더 없는 것 같은데, 그만 일어나자.”


그는 동의를 구하듯 쳐다보더니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휘둘리고 있는 내게 화가 치밀었다. 일어나지도 앉아있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계산대 앞으로 쫓아가자 그는 벌써 계산을 끝내고 호프집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난 좀 있다 약속 있는데, 넌 어디로 가나? 집으로?”


호프집에서 나오자마자 그가 물었다. 역시 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시선은 핸드폰을 향하고 있었다.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는데 정신이 팔린 그를 보면서 새삼 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깨닫고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내 상처를 헤아려줄 마음 따윈 없었다. 진심으로 나와 잘 지내고 싶었다 한들 그것조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뿐이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 순간과 똑같이.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이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용서가 되질 않았다. 그를 지나쳐 두어 걸음 앞에 섰다.


“기다리겠네. 가봐, 그럼. 먼저 갈게.”


그에게 먼저 인사를 던지고 걷기 시작했다.


“잘 들어가라. 나중에 보자.”


그의 외침이 공허하게 거리를 울렸다. 나중에 보자는 말을 과연 지킬 수나 있을까.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잘 지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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