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무엇 하나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3. 미정이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혼 이야기를 꺼낸 미정이는 나보다도 훨씬 당황한 눈치였다. 괜히 청첩장을 만지작거리며 지혁 오빠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뭘 그렇게들 놀라. 사귀다 보면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헤어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
지혁 오빠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미정이네는 결혼으로 끝을 맺고 우리는 헤어지는 걸로 끝을 맺었다는 것만 다른 거지 뭐. 더 빨리 끝냈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어차피 결혼할 게 아니었으면 좀 더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고. 정현이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봐야 새로운 사람하고 시작을 하든가 말든가 할 텐데 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나도 결혼은 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해보고 싶었던 다른 여러 가지 선택지들까지 흘려보낸 것 같고.”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지더라. 서로 시들해지는 걸 알면서도. 함께한 시간이 쌓이는 만큼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는 서로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서. 결국에는 정현이가 먼저 끝내자고 했어. 질질 끄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정현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던 게 지금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끝을 맺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정현이도 홀가분하다고 하고. 빈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끝을 맺고 싶었어. 오빠랑 정반대의 선택을 했지만. 어떻게든 긴 연애를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던 것 같아. 어찌 보면 오빠하고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
이제는 미정이가 고백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 보니까 서로한테 무뎌지고 나중에는 서로를 지루해하고 있는 거야. 마음이 식었다는 게 이런 건가 이대로 가면 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어. 다른 사람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야. 근데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 사람 하고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잖아. 준호오빠하고 문제가 된다면 다른 사람 하고도 똑같이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미정이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지혁 오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누구 하고 든 문제가 될 거라면 준호오빠하고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결론이 나더라. 준호오빠만큼 나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 또 그만큼 내가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자신도 없었고. 해결책을 찾다가 이제 연애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지. 우리한테는 결혼이 일종의 돌파구였던 것 같아.”
“그래. 그런 선택도 있고 이런 선택도 있는 거지. 결국 선택의 문제 아니겠냐.”
“그런가. 그런 거면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결혼이든 헤어지는 거든.”
나도 이들처럼 지금껏 연애를 해왔더라면, 미정이처럼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게 됐을까. 아니면 지혁 오빠처럼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을까. 나와 그의 모습은 그려지질 않았다. 그릴 수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의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지나왔을 뿐이었다.
“우리 얘긴 할 만큼 한 것 같고 이제 네 얘기나 좀 듣자. 뭐 좋은 소식 없냐, 연희야.”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좋은 소식 없어?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는 거야?”
“그렇게 좋은 소식이 듣고 싶으면 소개팅이라도 시켜주면서 물어보든가.”
“정말? 소개팅해준다고 하면 할 생각은 있는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면 진작 얘기하지 그랬냐, 인마.”
“그래. 해주라. 한 번 만나보지 뭐.”
“어떤 사람? 어떤 사람으로 해줄까?”
“음, 글쎄, 좋은 소식이 생길 만큼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