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결국 택한 곳은 반지하. 기껏 새롭게 고른 공간이 소위 주거"지옥"으로 옥탑방과 순위를 앞다투는 반지하라니, 고르고 나서 나 자신도 어이가 없긴 했다. 이렇게 적어내려가는 지금도 픽 실소가 난다. 그럼에도 돌고돌아 이 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주어진 선택지 중에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쓸 수 있는 예산만 고려해도 가능한 선택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소위 잘 나가는 분야도 택하지 않고 정규직도 마다하며 정반대에 가까운 길을 걸으며 하고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온 탓에 모아놓은 목돈도 없었고 무리하게 월세를 낼 만큼 돈이 많지도 않았다. 당연히 공간을 얻는데 필요한 전세금이든 보증금이든 공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월세 혹은 관리비도 그대로 부담이 되는 상황.
내 조건에 가능한 모든 것들을 찾아보다가 정부의 주택정책, sh공사의 주택공급관련 사항, 서울시와 성북구, 주변 지자체의 주택정책, 청년정책을 뒤지며 올해 공급되는 행복주택에 청년이나 예술인으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쓸모없이 방치해두었던 청약통장과 주민세를 내는 것으로 주민임을 입증하게 하는 무주택 세대주 증명서가 빛을 발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마침 행복주택을 공급하는 성북구에서 나고자란 토박이였기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3000만원 전후의 보증금, 30만원 전후의 관리비와 10여평의 공간.
다른 하나의 선택지는 도봉구의 문화예술인마을에 예술인으로 1인세대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지자체들이 시작한 주택공급사업의 일환으로 성북구에 적을 두고 예술분야에서 활동하는 나로서는 자격증명도 제출할 증빙서류도 충분했다. 2000만원 전후의 보증금, 20만원 전후의 관리비와 10여평의 공간.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가 다가구주택의 반지하였다. 5달이 넘도록 나가질 않아 보증금도 월세도 내리고 내리다 500만 원에 20만 원 이하까지 턱없이 낮아진 10여 평의 공간.
금액만으로 마지막 선택지를 고르게 된 건 아니었다.
행복주택은 당첨이 되어도 절차를 거쳐서 입주를 하려면 적어도 연말까지 기다려야 했다. 2년, 갱신을 하려면 조건을 증명하며 추가 계약 여부를 2년 이후에 기약해야 했기에 2년 이상 사는 게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예술인 주택 역시 입주하기 전의 증명절차에 거쳐 선정되는 것만도 9월 이후에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재산증명을 하며 계약을 유지해야 했고 공동관리인으로 전체 건물의 관리부 담을 함께해야 했기에 2년 이상을 살 수 있는지 여부도 더불어 살 다른 가구들과의 협력 여부도 예측하는 게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지원하더라도 당첨자 체도 높은 경쟁률도 어렵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지하공간은 곧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어 있는 상황.
위치와 교통편도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행복주택은 돌곶이역과 가장 가까웠지만 걷기에는 애매한 거리라 버스나 마을버스로 지하철역까지 이동하거나 10분 이상 걸어야 했다. 예술인마을은 쌍문역과 가장 가까웠다. 성북구보다 더 북쪽으로 교통편이 불편한데다 건물에서 쌍문역까지도 역시 걷기에 애매한 거리로 버스나 마을버스로 지하철역까지 이동해야하고 경사가 커서 여름이나 겨울에 오가는데 불편을 느낄게 뻔히 보이는 위치였다. 반지하는 상월곡역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위치. 내가 살고 있던 옥탑방과 같은 다세대주택의 지층으로 이사의 부담 역시 크지 않았다.
공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고려요소였다. 행복주택과 예술인마을은 새로운 아파트로 모든 것이 새것인 인테리어라는 장점에도 규격화된 공간에 나를 맞춰야한다면 반지하방은 페인트칠도 장판도 못을 밖는 것도 화장실이나 부엌의 수전을 바꾸는 것도 조명도 역시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에게 맞출 수 있는 그래서 규격화된 공간에 나를 맞추기보단 나에게 맞게 공간을 바꾸는 실험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덧붙여, 고령에 지병이 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상황이 날이 갈수록 악화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금처럼 전화 한 통이면 5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