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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an 06. 2023

잡지정리, 강박적 불안을 깨닫다.

의식주일상실험: 미니멀리스트 되기

1. 수납함에 감춰둔 시사인

옷을 제외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책, 잡지, 도록, 리플릿 등 그러니까 글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잡지 <시사인>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가장 많은 부담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 읽지 못하고 매주 쌓여가는 잡지를 볼 때마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몇 분기를 꾸준히 읽다가도 조금만 놓치면 금세 쌓이는 잡지를 어찌할 수가 없었고 이미 2017년부터 그렇게 쌓아온 터였다. 그 부담 때문인지도 몰랐다. 시사인을 책장에 꽂지 않고 보이지 않는 거실수납함 안에 넣어둔 게.

수납함은 거의 꽉 찬 상태였다. 2021년 중반부터 2022년 중반까지 꾸준히 읽은 대략 1년 치를 나눔 한 터였지만 2017년부터 읽지 못하고 쌓인 잡지들과 읽고 있는 몇 주전의 잡지 그리고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쌓이고 있는 최신본이 차곡차곡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그것들을 짧은 시간 안에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필요한 순간들인가? 계속해서 가져갈 것인가?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나는 다시금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질문들을 상기했다. 무엇에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잡지들이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을 훌쩍 넘어 나를 압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 정말로 정리해야 할 때였다.



2. 부채감 도대체 왜?

잡지들을 수납함에서 꺼내 거실 바닥에 쌓았다. 택배상자 한 박스 정도의 분량. 꺼내두면 눈에 거슬려서라도 정리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며칠을 거기 두고서도 나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시 연도별로 잡지들을 정렬하며 커버를 훑어보고 있었다. 읽기를 멈춘 건 2017년 탄핵인용 이후부터였다. 숨 가쁘게 이어졌던 재판, 대선, 평창올림픽.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매주 나갔던 집회, 서울시청과 광화문의 촛불들, 인파 속의 추위. 그 벅찼던 순간들 그리고 더불어 피로감도 되살아났다. 일상생활에 그리고 내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느꼈던 그 시기가 잡지를 손에서 놓은 바로 그 시기였다. 실제로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일이 바빠짐과 동시에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퍼즐을 맞추듯 2017년도의 이슈와 그때 나의 기억들을 꿰어보다가 나는 기어이 남은 2022년 일주일간 매일 각 연도별로 헤드라인만이라도 읽고 나눔을 해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말았다.

읽지 못하고 넘겨버린다는 부채감을 그렇게라도 만회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이 부채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잡지를 대하는 나를 들여다봐야 했다.



3. 놓지 못한 욕심

매일 일 년 분량의 헤드라인만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실패였다. 나는 헤드라인을 읽다가 이어지는 분석기사와 후속보도를 지나치지 못하고 빠져들었고 신간 도서소개와 최신비평에 혹시라도 나에게 도움 되는 책이나 내용을 놓칠까 봐 뒤지고 있었다. 밤마다 몇 시간씩 붙잡고 있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헤드라인만 보자고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결국은 새벽까지 해당연도를 끝내지 못하고 절절맸다. 그렇게 며칠째 스스로에게 시달리다가 피곤에 지치고 지쳐서는 알아차렸다.

욕심이었다. 최신의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는 강박과 최신의 지식을 늘 업데이트하고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지적인 허영. 시사인은 많은 신문과 잡지들 중에서도 탐사보도와 언론의 방향성을 꾸준히 고민하고 다져온 독립언론이었고 나에게는 가장 선별된 최신의 지식과 관점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과도 같았다. 그 플랫폼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사를 읽고 선별하고 또 활용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읽는 것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읽지 못한 권수만큼 뒤쳐지고 있다는 초조함. 밀릴수록 그만큼의 정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득함. 밀리는 속도를 좇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데 결국은 그 격차를 메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의 연쇄고리를 짚어보고 있자니 새삼 내 욕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는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4. 잡지에서 강박적 불안을 깨닫다.

내가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보를 닥치는 대로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 해도 내가 속한 미술계에서도 지극히 일부만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언제나 개인은 늘 자신의 시간과 공간, 한계를 넘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 쌓여온 지식들을 딛고 자신의 시대만을 살아갈 뿐이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집단의 지성에 기대어. 따라잡고자 하는 그 욕심 자체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허상을 좇는 강박적인 불안이었다. 광고, SNS, 이메일, 기사와 뉴스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놓치지 말아야 할,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박적인 불안.

내가 잡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던가. 시사현안이든 최신지식이든. 기자들의 관점과 저자들의 관점을 참고해 현황을 파악하고 내 나름의 이해를 넓히고 관점을 정하는데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종종 기사들에 새롭게 환기한 장면, 아이디어, 새롭게 알게 된 분야와 전문가의 관점들이 도움을 얻은 것도 사실이었다. 잡지는 시선을 확장하고 환기하는 도구였다. 속도를 맞출 필요는 있었지만 따라가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칠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고 활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일이었다. 앞으로 또 밀리게 된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5. 정리, 불안을 놓기로 하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나눔글을 당근과 네이버중고나라에 올렸다. 이미 언론준비나 논술시험, 시사와 관련한 인터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시사인이 인기 있는 교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정리일 터였다. 곧바로 연락이 왔다. 나는 2022년 갖고 있던 최신호까지 헤드라인을 훑고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 멀리 전라남도 순천으로 택배를 부쳤다.

택배를 잘 받았다는 쪽지를 받고는 나눔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 많은 걸 가져야 한다는 욕심과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을 다독이는. 나는 내친김에 공개적으로 미니멀리스트 실험을 선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흔들던 욕심과 불안에 또다시 쉽게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물건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정리하며 나의 일상을 좀 더 충실하게 채우고 싶어졌다.

<프로젝트 333>과 미니멀리스트닷컴에서 제안한 미니멀리스트게임에서 제안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미니멀리스트게임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1일 차에는 하나, 2일 차에는 두 개, 3일 차는 3개, 30일 차까지 매일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나가는 단순한 룰이 마음에 들었다. 시사인도 정리했으니 다른 품목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내 예상은 금세 틀렸다는 걸 알게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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