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2. 264, 뭐라고? 264?
겨울 옷을 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옷을 정리한 뒤라 걸려있는 옷들은 한눈에 들어왔고 세는 것에도 그리 시간이 들지 않았다. 아우터, 카디건, 원피스, 상의와 하의까지 92벌. 늘 겨울옷이 문제였지 봄가을, 여름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애를 먹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평상 하래 수납상자 4개 중에 2개는 이미 세어둔 겨울옷에 포함되니 나머지 2개에서 나오는 분량이라 봤자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 그런데 원피스부터 숫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더니 바지와 치마, 상의에 이르자 이미 겨울옷의 양을 훌쩍 뛰어넘고 말았다. 봄가을, 여름옷의 개수를 모두 더하자 264벌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264. 예상치 못한 숫자가 당황스러워서 다시 한번 계산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한번 종류별로 옷의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총 264벌
겨울에는 부피가 크고 눈에 띄는 아우터의 숫자가 많았다면 봄가을에는 아우터, 여름에는 원피스, 그리고 상의가 많아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계절별로 90여 벌로 어찌 보면 겨울과 비슷한 분량의 옷을 갖고 있는 셈이었고 나라는 사람의 특성과 취향이 반영된 옷들이니 계절별로 비슷한 분량도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찾아본 결과 구할 수 있는 건 2013년의 통계뿐이었고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여자는 185벌, 남자는 125벌이라고 했다.(*2013. 5. 15. 한겨레 신문보도) 10년 전이라고 해도 평균에 비해 약 60벌이 많은 셈이었다. 처음 정리를 시작하며 참고했던 책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가 떠올랐다. 그 책의 저자도 역시 옷장을 몇 차례 정리한 후에 옷을 세어본다. 그녀가 갖고 있던 옷은 695벌 (나중에 옷장을 정리하면서 추가로 발견된 옷까지 솔직하게 밝힌 바로는 711벌)였으니 그것에 비하면 양호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도 행거가 무너질 때까지 옷을 사들이던 맥시멀리스트임을 인정하고 <프로젝트333>에 도전해 132벌로 줄이기로 결심하고 결국은 성공한다. 나 역시 그렇게 줄이는 게 좋을까?
사실 <프로젝트333>에서는 옷만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옷과 더불어 함께 착용하는 아이템들, 그러니까 신발, 가방, 스카프나 모자와 같은 액세서리, 주얼리까지도 포함해서 3개월간 33개로 지내는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의 저자는 나머지를 제하고 옷에 집중해서 한 계절당 33벌로 4계절, 132벌로 계산한 것이었다. 나 역시 옷 이외에는 신발도 가방도 스카프나 모자, 주얼리도 그다지 욕심이 없기에 지나치게 쇼핑을 하거나 너무 많아서 공간을 잠식하거나 무엇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을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나머지는 제외하고 공간을 잠식하고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일종의 집착에 가까운 아이템인 옷에만 집중해 총 벌 수를 단순히 4계절로 나눈다면 66벌.
33벌의 딱 2배의 분량이었다. 너무 많은 건가. 아니면 적당한 건가. 헷갈렸다. 옷장은 확실히 넉넉해졌지만 <프로젝트333>과 비교해 본다면 2배의 옷장. 역시나 줄이는 게 좋을까?
글쎄. 곧바로 줄여야겠다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3개월에 33개라는 숫자는 가이드라인일 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칙도 벌칙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 실험은 1년을 마음먹은 것이니 아직 시간은 길게 남아있었다. 나는 우선 264라는 숫자를 상한선으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늘리지 않고 숫자를 유지하면서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며 계속해서 옷장 속의 옷들을 활용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옷이 있다면 그것을 줄여나가 보기로 했다. 지난 2개월 간 겨울옷을 정리했던 것처럼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는 동안 실제로 입어보고 활동해 보면서 맞지 않는 옷, 마음에 들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되기도 했다.
옷장을 정리한다는 건 시간이 필요한 일. 옷장 속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또 내가 가진 옷들을 마음이 가는 대로 즐기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경험들을 더욱 객관화해서 기록하고 나 자신의 스타일을, 옷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데일리룩을 핸드폰카메라로 기록하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게임을 하면서 매일 남긴 사진들이 나의 선호와 취향을 확인하게 해 주었더랬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데일리룩 사진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어떻게 입으면 더욱 멋스러운지,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것들을 관찰하며 나를 좀 더 알아가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한 친구가 되어 스스로가 좋아하고 어울리는 옷들만 남긴 미니멀옷장 만들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개수도 확인하고 정리의 기준과 방식도 한 번 더 환기하고는 꺼내둔 옷을 다시 종류별로 수납박스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분류를 하다 보니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맞긴 하지만 불편했던 옷들이 눈에 띄었고 그 김에 봄가을, 여름옷을 더 솎아낼 마음을 먹었다. 더불어 내 옷의 상한선을 264벌로 정했으니 남아있는 옷걸이도 혹시나 하는 걱정 없이 정리할 기회였다. 당근에 올리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눔으로 마무리.
이제 264벌의 옷과 함께 겨울을 마무리하면서 또 봄과 여름, 가을을 맞이하면서 다시 옷장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좋아하는 옷과 아닌 것들을, 잘 어울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활용하기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실제 나의 데일리룩 사진들로 확인해 나가며 조금씩 덜어낼 것이다. 좋아하는 옷들만으로 채운 여유로운 옷장을 만들어나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