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절반을 호이안에서 보냈다. 한국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일상을 지나듯 보낸 15일이었다.
나의 여행방식이 그렇게 바뀐 건 몇 년 전 여행 첫날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부터였다.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서 종종거리며 메뚜기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적어도 며칠을 머무르고 그곳의 지리와 일과를 익히는 것. 그렇게 익숙해져 그곳의 사람들과도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약간의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들에게 팁을 얻어 그들의 방식대로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는 것. 그들의 일과를 지켜보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일과를 돌아보고 점검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얻는 것.
이 모든 게 폰을 잃고 강제로 현지인들 가운데 고립된 까닭이었지만 놀랍게도 매 순간이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했기에 우연한 축복처럼 여겨진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늘 그렇게 여행하는 걸 택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며 장기여행을 하지 못한 지 삼 년 째였다. 오랜만의 여행을 결심하고는 이번에는 아예 한 군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로 처음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아예 그곳에서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질 만큼 시간을 보내며 근 일 년 전 엄마와의 이별을, 퇴직 이후의 시간을,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시간 역시 의식주를 건사하는 일과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2. 기내용 트렁크, 노점 그리고 홈스테이
여행지에서 나의 의식주일상실험은 기내용 트렁크, 노점 그리고 홈스테이라는 세 단어면 설명 끝이었다.
첫 번째로, 옷은 기내용 트렁크에 들어갈 만큼만.
장기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건 짐이 무거울수록 여행이 고생스러워진다는 당연하지만 쉽게 간과하게 되는 사실이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끌고 다녀야 하는 트렁크는 언젠가 어느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상의 번거로움을 길 위에서도 새삼 실감하게 해 준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게 되면 더더욱 기내로 반입할 수 있고 수화물을 기다릴 필요 없는 기내용 트렁크를 선호하게 됐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7kg 무게제한에 맞춰 최소한으로 짐을 꾸리려고 노력했음에도 트렁크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건 역시 옷이라는 사실이었다. 멋은 둘째치고 속옷과 활동에 맞는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가짓수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옷이 살아간다는 것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삼시 세 끼는 대부분 노점이나 길가의 식당들 중에서도 현지인들 속에서 함께.
사람들의 추천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곳에 덥석 들어가 앉아보기도 하고 혹은 인사를 건네는 노점상 할머니에게 끌려 그곳에 서 있던 다른 이들과 같은 메뉴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미 여섯 시부터 햇살이 눈부셔 일어나면 숙소 앞에 있는 노점상에는 등교하기 전 아침을 먹으러 들린 중학생들로 가득했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 두 명씩 나타나 뙤약볕을 피해 깊은 그늘을 드리운 밥집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곤 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강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음료와 간식을 주문하는 사람들. 호이안사람들은 대부분 밖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겼고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강변에서, 길가에서, 골목 앞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식사를 했다. 어디서나 풍부한 다양한 채소와 빠지지 않는 양념들과 함께.
세 번째로, 잠자리는 홈스테이로.
호이안에는 5성급 호텔부터 도미토리형태의 호스텔까지 다양한 숙소가 있었지만 초반에 친구와 함께한 며칠을 제외하고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홈스테이를 선택한 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숙소의 조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친절한 현지인 mr. truc이 운영하는 홈스테이는 호텔과 같은 형태에 아담한 집이었는데 호텔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퀸베드에 에어컨이 딸린 아늑한 슈페어리어룸은 1박에 만 2천 원-만 5천 원 정도의 가격이었고 나는 처음 며칠을 묵어보고는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일주일을 연장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올드타운에서 한 블록 떨어졌는데도 현지인들이 주로 살고 있고 작은 중학교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 아침에는 활기차고 밤에는 고요했다. 큰 창이 있어 눈부신 햇살과 함께 수탉이 우는 소리로 잠을 깨고 저녁에는 동네사람들의 찾아오는 맛집에서 키워놓은 음악소리로 사람들의 저녁 여가 시간을 알았다.
3. 여행에서 확인하는 취향,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
15일간의 여행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이 좋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잠자리는 작더라도 차분하고 아늑한 곳, 햇살이 환히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식사는 비싸지 않더라도 풍부한 재료와 손맛으로 막 만들어 내놓는 정성으로 충분하다는 것. 옷이 많지 않아도 믹스매치해 입을 수 있는 옷들이라면 생활하는데 충분히 다양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 미니멀한 의식주로 꾸리는 일상이 나에게 맞는 방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