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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희미하게 빛나는 순간

by 문성 moon song


앙가라강을 따라 하루종일 걸었던 날이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앙가라강 전체를 돌아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강을 따라 걷고 또 걸어 다다른 곳은 거대한 댐처럼 물을 가둔 둑이었다. 둑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 한 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둑 이쪽은 어느 싯구처럼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저쪽은 갈라지는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해가 천천히 가라앉아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모든 게 희미하게 빛날 때가 되서야 일어섰다. 모든 것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르쿠츠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아직 답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래도 나 자신을 대면할 수 있게 해주었음에 감사하며. 그곳의 터를 닦은 데카브리스트와 그의 부인들, 정치범들, 강제이주당한 이들, 대대로 그곳에 살아온 소수민들 그리고 앞으로 그곳에서 살아갈 그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들이 살아온 거대한 자연과 소박한 도시에. 그곳이 준 감탄과 두려움에. 그리고 또 다시 걸었다. 이르쿠츠크를 벗어나 바이칼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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