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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의 집, 알흔, 바이칼

by 문성 moon song

바이칼에 이르는 여정은 험난했다. 이르쿠츠크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 그렇게나 적막했던 이르쿠츠크 어디에 숨어들 있었는지 사람들은 자리를 꽉 채웠고 남은 공간마저 짐으로 채워 넣어 버스는 터질 지경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내내 엔진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씩씩대며 버스 안으로 열기를 고스란히 토해냈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신음에 가까운 외마디가 터져 나왔고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함께 겪는 고난에 유대감을 표했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려서도 부두로 가서 배를 타고 알흔 섬으로 들어가야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에 도착했다는 기쁨보다는 찌푸린 하늘 아래 바다나 다름없는 광활한 수평선과 돌과 모래뿐인 먼지가 날리는 척박한 부두에 당혹스러움이 먼저였다. 할 말을 잃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버스에 탔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말없이 얼얼한 엉덩이와 찌뿌드드한 몸에도 묵직한 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대부분이 알흔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니키타의 집. 그림 덕분에 그곳 그 순간이 오래전이 아니라 바로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곳의 첫인상은 바이칼의 첫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슬레이트 지붕과 거칠게 잘린 통나무로 지은 집들이 그곳의 척박한 풍경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있었다. 여러 채의 집들 너머로 듬성듬성 자란 풀과 나무, 선명한 자동차 바큇자국이 먼지 날리는 언덕에도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미처 다 둘러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었다.
거기에 있던 이들 대부분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나 역시 그곳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그때까지 만난 이들보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곳은 니키타의 집이라 쓰고 바이칼을 찾은 배낭여행자들의 아지트라고 불러야 하는 곳이었다. 통나무로 만든 숙소며 화장실, 침대, 탁자는 모두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었지만 아늑하고 편안했다. 식사도 오트밀이나 치즈, 오믈렛 같은 소박한 음식뿐이었지만 따뜻하고 맛이 있었다. 그곳의 주인 니키타는 불쑥 나타나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묻곤 했다. 게스트하우스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그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백발에 가까운 금발에 온화한 표정은 나이를 꽤 먹은 것 같다가도 윙크를 하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장난기 넘치는 뒷모습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가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그를 닮아 무뚝뚝하면서도 따뜻했다.
척박한 땅이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도 더욱 따뜻하게 받아들이게 한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척박한 땅이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도 더욱 따뜻하게 내주게 한 건지도 몰랐다. 무엇이 먼저든 척박한 그곳에서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익숙한 관계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다시 배우는 나날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지만 부대낄 수도 있다는 것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면 헤어지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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