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갈만큼 갔다고 여겼던 박물관을 이르쿠츠크에서 또 다시 찾아갔다. 외로움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표끊는 아주머니라도 아니 진열장 너머 물건이라도 만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오래된 건물, 손때묻은 진열장, 유리조차 씌우지 않은 진열품들, 우리로 치면 민속촌에 해당할 만한 이르쿠츠크 향토박물관Irkutsk Museum of Regional Studies이었다. 그곳에 있는 유물들은 이르쿠츠크 지역의 역사와 그곳이 러시아의 영토이기 전부터 살아왔던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더듬게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여기 이 사슴모양의 금속공예품이었다.
날렵한 곡선은 그 형태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우아하면서도 동세가 느껴지는 윤곽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금이라는 재료는 여전히 빛나는 그리고 여전히 섬세한 사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어째서 이리 끌리는 걸까 생각하다가 오래 전 스치듯 배웠던 것들이 떠올랐다. 날렵한 동세를 느끼게 했던 신라의 순금 장신구들. 금속 공예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던 신라의 유물들을 학계에서 그 원형으로 이야기했던 스키타이 문명의 유물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들었던 것은 어쩌면 그 익숙함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 느꼈던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곱씹어보며 다시 한번 스키타이문명을 생각한다. 유목민 중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꼽혔던 그들은 유라시아 초원을 따라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쳤지만 결국은 각 지역으로 흩어져 다양한 문명 속에 융합되었다. 그 일부가 시베리아에 남아 러시아의 소수민족이 되었고 그들의 역사가 지역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순금의 사슴공예품이 초라한 진열장 속에 들어있는 것에 무언지 모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다시 자료를 찾아보며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도판들에서 그저 방대한 소장품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는 스키타이 문명의 금속공예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에르미타시에서 소장하고 있는 스키타이문명의 금속공예품 중에서 위의 사슴과 가장 비슷한 작품은,
http://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digital-collection/25.+Archaeological+Artifacts/1124504/?lng=ko
수사슴은 스키타이인들에게 태양의 신이자 풍요와 생산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동물의 형상이 주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종종 수사슴을 사용해서 장식하고 그와 같은 장식품들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고 한다. 그들의 주술처럼 그림속의 사슴이 살아나 수풀속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햇살을 받으며 드넓은 시베리아 초원을 자유로이 뛰어놀다 가물거리는 지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