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질문들은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질문도 있었고 편지로 대화를 나누기 마음먹고 나서 떠오른 질문도 사빈이 대화에 응해주겠다는 답장을 받고 나서 떠오른 질문들도 있었다. 일상에 닥친 일들부터 해나가다가도 불쑥 질문이 떠올랐고 얼른 질문들을 정리해서 시작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일었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지 혹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단편적인 질문들을 나열하거나 지엽적인 것들만 묻는데 그치지 않고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도 공감을 넘어 영감을 줄 수 있는 대화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했다. 한편으론 나의 질문들만으로는 바로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이들의 질문들도 포함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 질문들을 적어 두고도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른 이들의 질문을 구해보기로 했다. 예전 프로젝트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이자 기획자로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여성들의 질문들을. 편지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혹 묻고 싶은 것이나 듣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고맙게도 바쁜 와중에 각자의 질문들을 공유해 주었고 그것들을 다시 내 질문과 함께 정리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각자 자기 앞에 닥친 문제 혹은 상황에 관련된 질문들이었지만 결국은 그 질문들 아래에는 자신 이외에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혹은 이와 같은 상황을 겪는 이가 있는지 찾고픈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런 이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이에게 그이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답을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질문에 대한 공감이자 격려가 된다는 것을.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더 많은 이들의 질문을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좋은 질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은 더 좋은 대화를 만들고 싶은 나의 욕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기에. 지금 내게 있는 이 질문들에서 시작하면 될 뿐이었다.
나는 모은 질문들을 정리만 하기로 했다. 유사한 질문들을 묶고 큰 방향을 다듬어보니 질문들은 총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졌다. 편지로 질문을 또 답을 이어가게 될 사빈을 고려해서. 다섯 가지 주제를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이어 나가 보기로 했다. (1) 일상, (2) 일, (3) 관계, (4) 여성으로서의 삶, (5) 가치 혹은 신념에 관한 질문들로. 순서를 매기며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우리의 질문들은 일상부터 가치관까지 너무 다양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국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을 온전히 보듬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온 절박한 노력이라는 것이었다.
만개 ©김문성, 2024.
그렇게 질문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 편지프로젝트의 개요를 완성하고 나자 아이디어가 하나 더 떠올랐다. 이제 편지로 이어나가게 될 대화를 이곳에 연재하면서 편지에 생각을 헤아려나가던 순간들을 담을 수 있는 풍광을 함께 싣는 것이 어떨까. 질문을 정리하며 바라보았던 하늘, 사빈에게 편지를 적어 내려가며 보았던 흩날리는 벚꽃잎들, 그리고 사빈이 이따금 보내주었던 그녀의 정원, 그녀가 산책하던 숲길. 이 모든 과정들과 함께했던 풍광들이 그 자체로 이 대화에 표정과 온기를 더해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풍광들을 함께 나누며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이들이 질문들 속에서 혹은 사빈의 답변 속에서 위로를 또 공감과 격려를 얻을 수 있었으면 했다. 지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내가 그렇듯.
꽃잎들 ©김문성,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