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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가 삼림을 지나며

by 문성 moon song

열차는 며칠째 지평선을 달렸다. 타이가 삼림이라 불리는 깊은 숲을 지나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숲. 아름답지만 단조로운 풍경 속에 기차안에서도 단조로운 일상, 나지막한 대화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드넓은대지가 펼쳐지면 펼쳐질수록 내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며 그때 그 순간이 알랭 드 보통의 말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공간이 달라진다고 해서 우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우리는 익숙했던 일상의 시공간에 갇혀있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바라볼 수 있음을.
기차가 시베리아의 깊은 숲을 달리듯 나도 내 안의 깊은 숲을 달렸다. 들어가보지 못한 빽빽한 숲이 나를 매혹하듯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가 나를 매혹하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나무들과 풍성한 잎들 그리고 무성한 수풀에 길을 찾지 못하고 서성이듯 미래로 가는 수많은 갈래의 길 속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저 숲 속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와 두려움이 일듯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일었다.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숨이 가빠왔다. 저 아득한 풍경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풍경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기도 했다. 얼른 미래의 일부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미래가 아예 오지 않았으면 싶기도 했다. 그때의 난 아직 20대 중반도 넘지 않은 나이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한다. 그때와 같고 또 다른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여전히 인생이라는 긴 숲 속에 있는 나를. 울창하고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수없이 갈라진 길 앞에서 고민한다. 곧게 뻗은 우람한 줄기가, 섬세하게 뻗은 가지들이, 화려한 꽃들이 제각기 다른 길목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그 길들 앞에서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사라지고 싶어도 도망치고 싶어도 그대로 발을 옮긴다. 지금과 같은 이전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를 다독인다. 괜찮았다고,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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