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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기념 그리고 기억

by 문성 moon song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이 준 기록은 이것이 전부였다. 기차티켓 두 장과 박물관티켓 두 장, 영수증 두 장. 기차티켓은 이르쿠츠크에 들어왔다가 나간 것이 사실상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에서 남은 기록은 4개의 종이쪼가리뿐. 모스크바와 상뜨는 추리고 추려서 한 장에 담아야했으니 4장의 종이쪼가리로도 새삼 그곳이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누렇게 변해버린 얇은 갱지의 인쇄물 티켓에 낡고 거친 외관에 박물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머뭇거게 하던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의 오래된 나무냄새를 맡는다. 붉은 색의 티켓에 러시아를 상징하듯 붉은 색의 육중한 성채에 전리품처럼 소수민족의 물건들을 늘어놓았던 향토박물관이 겹쳐진다. 수퍼영수증 목록에 혹시라도 돈이 모자랄까 싶어 물건을 하나 집을 때마다 암산을 하던 순간이, 품목마다 동그라미를 치며 일주일 치 식량값을 계산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레스토랑 영수증은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에서의 마지막 날 얻은 것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유일한 호텔 앙가라에 들어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내내 웨이터가 옆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고급 레스토랑 서비스였다. 그곳에 러시아요리가 없어 파스타밖에 먹을 게 없었다는 깜짝반전이었지만. 그래도 벤치가 아니라 흰 테이블보가 깔린 테이블에서 슈퍼에서 사온 빵과 햄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아니라 요리사가 해준 요리로 마지막 날을 기념했다. 묵언수행하듯 혼자 지내던, 어느 순간에는 만끽하고 어느 순간에는 견디며 보냈던 날들을. 그날들을 뒤로 하고 또 새로이 맞이할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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