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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의 마지막 풍경

by 문성 moon song

알흔은 바이칼을 유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비와 안개 속에서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만류하던 사람들을 미련없이 떨치고 나섰다. 바이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혹 다음에 오게 된다면 그 때 또 다른 바이칼을 보면 그만이었다. 혹 오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겪은 며칠로 이곳을 기억하게 되리라 해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리고 나를 휩싸던 안개로 이곳을 기억하게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짐을 싸고 이르쿠츠크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이 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흔에서 보는 바이칼을 보고 싶어 호숫가에 나섰더니 안개가 물러나고 첫날 보았던 아득한 수평선이 펼쳐졌다. 바다와 같은 바이칼. 이곳에 사는 어부들이 배를 탈 때마다 바다에 나간다고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충분히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들이 나설 때마다 달라졌을 바이칼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 풍경 속에 내가 있었다. 해를 품은 구름이 흐릿하게 빛나고 잔잔한 물결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 그 미세한 떨림까지도 음미하고 있었다. 잠깐을 그렇게 보내고는 그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고 돌아섰다. 버스로 향하는 한 발 한 발 더욱 힘이 붙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웠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불안을 견뎌야 했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선택하고 겪으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순간들이 쌓여 내가 되는 것이었다. 알흔을 떠나 바이칼의 풍경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바라고 있었다. 매 순간 나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을 하기를. 선택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매 순간을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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