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기차소리를 듣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이 기차소리를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오래전 블라디보스톡을 향해 달리던 시베리아횡단열차가 규칙적으로 덜컹인다. 덜컹 덜커덩 덜컹 덜커덩 커졌다 작아지며 열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기던 그때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덜컹대는 기차소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배경음악이었다. 아니 시베리아횡단열차 그 자체였다. 처음 횡단열차에 타서는 자려고 누워서도 들리는 덜컹거리는 소리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횡단열차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자 꿈속에서도 덜컹거리는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덜컹 덜커덩 덜컹 덜커덩 반복되는 소리가 꼭 열차의 심장박동 같았다. 열차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알리는. 덜컹임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열차 내부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 역시 그 속도에 맞춰 숨 쉬고 있었다. 함께 시베리아의 풍경 속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며칠을 이어지던 타이가 삼림을 지나 초원이 펼쳐졌다. 블라디보스톡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도착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물거리는 지평선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흔들리는 침대에서 잠을 깨고도 눈을 감은 채 덜컹 덜커덩 덜컹 덜커덩 열차가 달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눈을 떠서 창밖을 확인하면서도 이를 닦으면서도 사람들과 모여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짐을 싸고는 모두들 나란히 앉아 곧 끝나고 말 시베리아의 풍경을 감상했다. 덜컹 덜커덩 덜컹 덜커덩 열차가 달리는 소리와 이따금 나지막이 속삭이는 러시아어와 함께 푸르른 대지가 넘실거렸다. 모든 게 하나로 어우러진 그 순간 그대로 모든 게 정지했으면 덧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 모든 게 얼마나 반짝이던지. 또 얼마나 벅차오르던지. 그런 순간을 맞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 순간이 찰나였기 때문에 더욱 반짝거렸음을, 더욱 벅차올랐음을 안다. 그 순간만이 아니라 매 순간이 어디론가 향하는, 달려나가는, 순간순간임을. 어떤 순간은 반짝거리고 또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다만 매 순간을 그때 그 순간처럼 최대한으로 누리고 또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 때로는 풍경으로 눈을 돌리고 때로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침묵하기도 하면서.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덜컹임에 귀 기울이던 것처럼 내 안의 두근거림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