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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pr 25. 2021

우정이란 이름의 마일리지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형. 잘 지내셨죠?”


 분명 편히 이야기하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뭔가 이상했지만 우선 모른 척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몇 마디 주고받은 후에 그는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다며 본론을 꺼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지만, 그렇다고 ‘이럴 때만 연락하는구나.’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든 결혼식을 이런 시국에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의 결혼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직접 만나서 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형. 다음에 코로나 좀 풀리면 꼭 봬요!”


 모바일로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는지 그가 자꾸만 죄송하다고 했다. 이럴 때나 한 번씩 보는 건데 코로나가 그 기회까지 뺏어버린 점은 물론 아쉬웠지만, 이건 그가 죄송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도 정말 괜찮았다. 정말 아쉬운 것은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 나는 그게 그렇게 아쉬웠다.


 지금보다도 많이 어렸던 옛날에는 살면서 마음을 나눈 이들 모두와 영원히 친하게 지내는 것을 꿈꾼 적이 있었다. 나이를 먹으며 이 꿈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는 금세 알게 되었고, 주위에는 어느새 친한 사람들보다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애초에 친해지지 못하고 아는 사이에서 멈춘 이들도 있고 예전엔 분명 친했지만 조금씩 멀어지다 이제는 그냥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들도 있다. 내가 조금 더 연락을 먼저, 많이 했으면 아직까지 그들과 친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마주쳤을 때 어색하다고 못 본 척 눈 돌리지 않고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면 우리는 아직도 친했을까. 대체 친하다는 것의 기준은 뭘까.


 우정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우정이 마일리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관계로 만나 얼마만큼의 시간과 감정을 어느 정도의 농도로 나누었는지에 따라 적립률과 소진율이 달라지는 그런 마일리지. 함께 할 때면 계속 적립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점점 줄다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것.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더 크게 적립되고 더 오래 유지되는 것.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사라진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 진짜 마일리지와 다른 점이라면 언제 소진된다는 알림 메일이 오지 않는 것 정도.


 한번 맺어둔 매듭도 가만히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다 풀리기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가끔씩 나누던 생일 축하, 명절이나 신년 인사들이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조금씩 늘려주긴 할 테지만 새로 적립이 되지 않고서야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이 마일리지의 숙명이다. 제아무리 VIP 등급까지 마일리지를 쌓아뒀어도 로그인 한번 없이 수년이 지나면 마일리지는 소멸하고 만다.


 조금 삭막하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하는 행동 모두가 주위 사람과의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친밀함의 등급을 유지하는 과정인지 모른다. 너는 나에게 이만큼의 마일리지를 적립해 뒀고, 나는 너에게 그만큼의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있다. 이 마일리지가 남아있는 한 우리는 아직 친한 사이이고, 마일리지가 소멸되면 그저 아는 사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낯간지러워 한 번도 드러내 놓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어린 마음에 ‘평생 함께 갈’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그들과 나 사이의 마일리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혹시 내가 그쪽에 적립해뒀던 마일리지는 이미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닐까? 내일은 모처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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