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text Oct 18. 2021

축가와 축하

 친구에게 결혼식 축가를 부탁받았다. 노래에 자신이 부쩍 없어진 터라 차라리 사회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노래였다. 주위에 축가를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말에 그의 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설마 결혼식을 망칠 정도로 엉망이진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조금은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 친구와 상의 끝에 후보곡 몇 개를 골라 보내주었는데 모두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들이었다. 이런 노래들이 축가로 널리 사랑받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는 참 어색하기만 하다. 축가를 부르는 이가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 이에게 닿지 못할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 말고 정말 결혼을 축하하는 내용의 노래도 몇 개 찾아보긴 했으나 아쉽게도 혼자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어 결국 후보곡 중 하나를 골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해 주고 싶은 축하, 불러주고 싶은 축가는 따로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축가든 축하든.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만족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회를 봐주고 싶었지만 축가를 부탁받은 것처럼 주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것이 어렵고,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는데 사랑 노래를 부르게 된 것처럼 바라는 것이라 해도 그 정도를 맞추는 것이 또 어렵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축하가 부담이 되면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모두 불편하다.


 또한 축하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렵다. 가벼운 친구 사이에서야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나 치킨 한 마리만으로 충분히 고맙다지만 연인의 생일에 말 한마디나 치킨 한 마리만 보냈다가는 뒷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상대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축하를 알고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소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라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이 경우에는 제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싫어하는 거였지, 이건 이미 있다고 했지, 이건 반응이 별로였지... 애초에 여러 번 실망시켜서 기대치를 잔뜩 낮추는 방법도 있다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지 않은가.


 얼마 전에 친구의 집들이에 간 적이 있다. 섬세함과 거리가 먼 나는 집들이 선물로 간단히 상품권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기도 쉽고 받는 이도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을 테니 서로에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상품권 말고 이게 좋겠다며 가습기를 골라주었다. 이제 막 입주했으니 큰 가전들이나 샀지 생활에 필요한 작은 가전들은 없을 테고, 마침 겨울도 다가오고 있으니 분명 가습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가습기 선물을 받은 친구 부부는 마침 너무 필요하던 것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만약 상품권을 주었다면 이 정도로 기뻐했을까? 설령 그 상품권으로 내가 선물한 가습기를 샀다 해도 아마 그 정도로 고마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뻐하는 친구 부부를 보니 나는 이런 거 잘 못한다고 대충 넘어갔던 수많은 축하할 기회들이 생각났다. 내가 조금만 더 고민해 봤다면 내 소중한 사람들이 조금 더 기쁠 수 있었을 텐데.  


 요즘 주위를 보면 선물을 고르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 아예 선물을 하지 않거나, 받고 싶은 선물을 메신저에 등록해 두거나, 받은 것을 똑같이 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괜히 선물을 고르느라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고른 선물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기라도 하면 주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간단히 상품권을 주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꼭 필요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친구 부부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축하는 결국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방식으로 하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축하를 해 줄 때 그 효과가 더욱 크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어떻게 해야 축하하는 마음이 잘 전달될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앞으로는 축하받는 이가 더 기쁠 수 있도록, 축하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봐야겠다.

이전 06화 우정이란 이름의 마일리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