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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02. 2021

공동의 선

기-승-전-답이없는 이야기 (1)

 아프리카를 기점으로 시작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백신 접종 덕분에 끝나가는 듯 보였던 코로나 시국이 다시 엄중해지고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마치 1년 전으로 시계가 돌아간 기분이다.


 이번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일부 선진국에서 백신을 독점했기 때문이라는 "백신 독점론"이다. 선진국에서 백신을 독점하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낙후한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후진국에는 여전히 코로나가 성행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분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떠나서, 선진국의 백신 독점이 새로운 변이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설령 선진국의 백신 독점이 새로운 변이의 원인이라 해도, 그것을 선진국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백신을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며 이것은 당연한 처사다. 당장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조차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데 주위 다른 나라를 돌아보며 백신을 나눠줄 여력이 있을 리 없다. 2차 접종으로도 부족해서 부스터샷이 필수가 되고, 심지어 이조차도 부스터샷이 아니라 '3차접종'이며 몇차 접종까지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자국민에게 맞출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위해 백신을 지급한다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 백신을 만들고 팔아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다른이들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나눠준다는 것은 쉬이 기대하기 힘든 선(善) 이다. 


 공동체를, 다수를 위한 선의는 주장하고 요구하기는 쉬우나 막상 당사자가 되면 이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꼭 이번의 코로나 변이 건이 아니어도 이런 문제는 여러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으니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말은 언뜻 듣기엔 모두가 따라야 하는 공동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만큼 막대한 자본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급격한 탄소 배출 절감을 반대하는 일부 개발 도상국에서는 "선진국들은 예전 산업 혁명 시대부터 지금까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해서 잘 살게 되었으면서 우리도 잘 살아보려고 하니 그걸 못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들을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탄소 배출 감소에 선뜻 동참시킬 수 있을까.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을 지켜야 하니 그 일대를 개발하지 말라고 하면 브라질은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


 결국 공동의 선을 위해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행동이란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이 납득할만한 보상으로 느낄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그러나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하는, 그래서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공동의 선이란 과연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공동의 선이라는 것은, 이루기에 너무나 멀고 험한 길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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