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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Feb 13. 2022

설레지 않는 것을 버린다는 것

 휴대폰 메모장을 뒤적이다 '언젠가 찾아볼 것'이라는 카테고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넷플릭스)》라고 적어둔 것을 발견했다. 지인에게 추천을 받았던가 인터넷에서 봤던가. 어떤 경로로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메모를 할 당시 느꼈던 생각은 어렴풋이 떠올랐다. 지인인지 인터넷에 글을 올린 누군가 인지, 무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본 뒤로 마음속 잡념이 사라지고 새로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말에 '그렇다면 나도 한번!'이라며 적어 두었던 것이다. 장르가 뭔지 뭘 하는 내용인지도 모른 채 막연히 명상 정도 되겠거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찾아보니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곤도 마리에라는 정리의 대가가 집 정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집을 정리해 주는 - 엄밀히 말하자면 정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 다큐형 콘텐츠였다. 첫 번째 편은 아이가 둘 있는 집이었고 가장 먼저 정리할 항목은 옷이었다. 곤도 마리에는 의뢰인들에게 "옷장에 있는 옷을 모두 꺼내 하나하나 만져보고, 설레지 않는 것은 버려라."라고 말했다. 의뢰인들은 곤도 마리에의 말대로 옷장에 있던 옷을 모두 꺼내 늘어놓고 버릴지 남길지, 이 옷이 본인을 설레게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하나하나 판단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도 정리하자." 총 8편짜리 영상 중 1편을, 그것도 50여분 중에 절반 정도만 봤을 때였다.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옷장 속에는 참 많은 옷들이 있었다. 이 기회에 입지 않는 것들은 꼭 버려야겠다 싶어  걸려있던 옷을 모두 꺼내 방 한쪽에 늘어놓았다. 별로인 줄 알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막상 입어보니 괜찮은 것, 추억이 담겨 있어 버리지 못하고 고이 모셔둔 것, 분명 무척 좋아하고 자주 입었던 옷인데 이제는 너무 낡았거나 더 이상 내 몸에 맞지 않게 되어버린 것, 아직 남아있던 줄 알았는데 어느샌가 없어진 것들까지. 머리로만 생각해 왔던 것과 옷장 속에 어떤 옷들이 있는지 실제로 꺼내 보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버릴지 남길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젠가 다시 입을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남겨 둔 옷들이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정리할 때는 매번 남겨두기로 결정했던 분류인데 이번에는 조금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옷을 오래 보관하고 있다가 유행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 옷을 다시 꺼내 입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의 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새 옷을 샀으면 샀지 예전에 입었던 옷들을 꺼내 입은 적은 없지 않았던가.


 이렇게 옷을 다 구분하고 나니 이번엔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옷에 가려 보이지 않던 구석에 잔뜩 쌓인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고 탈취제도 새것으로 바꿨다. 기왕 이렇게 다 꺼내고 비웠으니 언젠가 하고 말겠다 벼르고만 있던 옷장 재배치까지 해버리기로 했다. 옷장 근처에 놓게 된 다른 짐 때문에 자주 사용하는 것들에 손이 잘 닿지 않아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숙원사업까지 끝내고 나니 옷장은 이제 덜 어지러웠고, 어떤 옷들이 있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옷의 분류 기준을 다시 정해서 옷을 고르거나 정리할 때마다 느꼈던 혼란이 한결 줄어들었고, 옷장 자체에는 여유공간도 생겼다. 복잡하거나 불필요한,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정말 괜찮은 것들만 잘 남긴 것 같아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낸 듯 무척 뿌듯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옷장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쌓여있는 다른 짐들로 생각이 번졌다. 평생의 숙원인 것처럼 품고 살던 생각, 거창하게 다짐했지만 이루지 못한 새해 소망,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며 계획했지만 방치하고 말았던 자기 계발에 대한 열정 같은 것들이 잔뜩 뒤섞여 있을 텐데. 이것들도 다 꺼내놓고, 하나하나 만져가며 설레는지 판단하고, 나름의 규칙으로 분류하고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공간에 쌓인 먼지들도 다 닦아내야 할 텐데.


 어쩌면 내게 - 이 영상을 찾아봐야겠다는 - 영감을 준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추천을 했든 인터넷에 글을 남겼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정리를 훌륭하게 해내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뒤죽박죽 섞여있던 짐들을 설레는 것들만 남기고 잘 덜어내었겠지. 아마도 옷장을 정리한 것보다 훨씬 더 뿌듯했을 것이다.


 영상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옷장 정리를 마친 후에는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다른 비법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겐 '쌓여있는 것들을 꺼내 늘어놓고 하나하나 만져가며 설레지 않으면 버리기'로 충분해서였다. 좋은 방법을 알아냈으면 남은 것은 실천이다.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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