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하는데 혀 끝에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이빨과 이빨 사이에 골이 파인듯한 촉감. 매끄럽던 단면이 거칠고 날카로워진 기분. 예전에 치료한 적이 있는 쪽이었다. 별일 아닐 거라고 애써 모른 척해봤지만 식사를 마치고 그 부분에 음식물이 낀 것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아, 치료했던 부분이 깨어진 모양이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이 그것인데,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나는 깨진 이빨을 보며 이 변화를 겪었다. 아니야, 내 이빨이 깨졌을 리가 없어. 평소에 이빨 관리 좀 잘하지 이런 멍청이! 앞으로는 양치질 더 잘할게요,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이번에 치과에 가면 시간이랑 돈을 얼마나 써야 할까. 치료는 또 얼마나 힘들 거고. 별 수 없구나. 치과에나 가봐야겠다. 뭐 이런 식이다.
제 발로 걸어간 치과에서 나는 입대 전에 머리를 짧게 자르던 그 순간처럼 우울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내 입 속 여기저기를 살펴본 의사 선생님은 치료했던 이빨이 깨진 것이 맞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다른 치료 부위도 떨어져 나갔으며, 충치도 확인되어 그곳도 치료해야 한다고 상냥하게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를 다시 한번 빠르게 겪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감정을 더 느낀다.
"오늘부터 바로 치료 시작하시겠어요?"
"네. 치료는 해야죠."
이 감정은 아마도 체념일 것이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앉아있던 자세가 누운 자세로 바뀐다. 천으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입을 한껏 벌린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와 자세는 비슷하지만 머릿속은 완전히 다르다. 미용실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편안히 릴랙스 한다면 치과에서는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자책이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서 또 이러고 있나. 정기 검진일이라고 왔던 문자는 왜 무시했었나. 왜 나는 한 번의 경험으로는 바뀌지 못하는가.
유치(乳齒)가 다 빠지고 난 뒤에는 치과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딱히 아프지 않았고 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약간의 통증이 있거나 불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는 기분에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사랑니가 날 때도 적당히 참을만해서 나는 내가 치아 복이라도 타고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이빨은 마침내 아파져서 결국 치과에 가게 되었다. 단순히 충치치료 정도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가로로 나서 옆 이빨을 밀어내고 썩게도 만드는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신경 치료까지 꽤나 많은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치과에 마지막으로 온 것이 언제인지 물었고, 10년도 더 된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한번 상한 것들은 고쳐도 다시 본래의 성능을 내지 못해요. 그래서 고장 났을 때 잘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고장 나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날부터 나는 몇 달 동안이나 퇴근 후의 지친 몸을 이끌고 치과에 다녀야 했다. 앞으로는 탈이 나기 전에 꼭 미리미리 관리하리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치료가 끝나고 이빨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자 의사 선생님의 말도, 그날의 굳은 다짐도 모두 까맣게 잊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치과를 찾게 된 오늘 이 순간 까지도.
마취되어 감각이 없는 입 안에서 이빨이 갈려나가는 진동이 느껴진다. 의사 선생님이 잘 치료해 주시겠지만 이제 저 이빨도 본래의 성능을 내지는 못하겠지. 한번 고장 나면 고치더라도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고장 나지 않게 미리 관리해야 하는 것은 이빨뿐이 아닐 것이다. 치료비에 놀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밀며 생각했다. 다음 정기 검진은 꼭 맞춰 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