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피기 시작한 올해의 첫 벚꽃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떠올린 문장이 제법 운치 있다 싶어 그럼 오랜만에 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한편 써서 브런치에 올려보자고도 다짐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점에 맞춰 올리면 참 좋겠다- 싶어서. 하지만 그리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저 한 문장을 쥔 채 좀처럼 그 이상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했고, 벚꽃은 나의 굼뜬 생각을 기다려주지 않은 채 눈처럼 지고 말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앙상한 가지뿐이던 자리엔 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녹색 새순이 자리했다. 날씨만 봐서는 잠시 찾아왔던 봄이 그새 돌아가 버린 듯했다.
봄을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보니 이곳저곳에 봄과 꽃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캠핑용 의자나 돗자리를 가지고 나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근처에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시선이 갔다. 산책을 하면서 꽃을 보는 것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들의 방식이 왠지 봄을 더 진하게, 편히, 잘 즐기는 듯해서였다.
아 맞다. 나도 차에 캠핑용 의자 있는데. 공원까지는 운전을 해서 갔으니 술은 마실 수 없다지만 의자에 앉아서 커피정도는 마시며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산책을 하는 동안은 이런 것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야 생각이 났다. 준비 없이 그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던 것을 부러워만 하다 끝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짧은 봄인데 스쳐 지나가듯 즐길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좀 진득하게 즐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올해 봄도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 잡을 수 있다고 했던가. 봄이라는, 벚꽃이란 기회는 모두에게 왔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은 나는 그것을 보다 진하게 즐기지 못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매년 찾아오는 기회도 이럴진대 몇 안 되는 사람에게만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기회는 어떻게 알고 잡을 수 있을까. 그걸 놓치고 나면, 지나가고 난 뒤에야 왔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억울할까.
내년 4월 첫 주 주말에는 돗자리를 가지고 꽃놀이를 가야겠다. 그래서 내년 봄은 올해보다 조금 더 진하게 즐겨봐야겠다. 플래너에 내년의 일정을 한 줄 적어두며 찰나 간에 지나가버린 봄과 잠시 있다 떨어진 꽃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