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➌
나는 한 자리가,
너는 두 자리 숫자가 모두 바뀌기까지
고작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엊그제보다 조금 따듯한 오늘.
난 에어팟 프로가 있고 그럼에도 잃어버리고서 세 번째로 다시 산 줄 이어폰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작업실로 나선다.
그리고 지난 십 일간 내 마음속에서 K를 쥐었다 놓아야 했던 시간들을 세며 다시 그 아이의 심장을 조심히 쥐어들어 쓰다듬어보려 용길 낸다.
난 K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그 아이가 느끼는 슬픔의 수심을 재기 위해 손을 길게 뻗어 그 끝을 만지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긴 당연히 내게도 그렇듯 해파리들이 살고 있었다. 내게도 있는 건데 그 물속에 떠다니는 해파리며 부스러기며 온갖 나에게 날아들어오는 방해물들을 버거워했다.
그래서 자주 K를 놓았다. 미안해 내가 용길 잃었어. 미안해 내가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도 혹시나 아직 늦은 건 아니라면 내가 다시 네게 헤엄쳐 갈 수 있게 길을 한 번만 더 열어줄래?
그러자 K가 처음으로 대답한다. 넌 늘 매사에 기쁨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음을 내가 알고 있어. 그러다가 어떤 날은 페달을 열심히 밟다가도 너무 힘찬 탓에 구르던 발길질이 씹힐 수도 있는 거야.
그런 건데 그때 속도를 잃은 너를 너무 미워 말아.
내게 오는 길도 마찬가지겠지?
있잖아 K야, 나 너를 이제껏 사랑했던 게 맞는지 고민했던 게 참 당연하지만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난 내가 기쁜 것보다 네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게 더 우선이야. 내겐 그게 더 중요해. 나의 행복을 위해 너를 불안하고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네가 많이 힘들어했단 소식을 듣곤 그날 내내 너를 떠나보내야 한다며 네 이야기의 끄트머릴 잡고 울고 또 울었어. 다음날 일어난 나는 앞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고 두 눈이 크게 부어있는 채로 K 없이 살아가야 할 하루를 허망하게 계산해 보기에 그날 하루동안 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렸어.
이 몇 줄을 번역하면 모두 사랑해 가 될 텐데 사랑을 너무 기대한 탓에 사랑하는 나를 너무 기대한 탓에 뭔가 더 대단한 기분과 대단한 다짐, 그리고 엄청난 말과 행동이 나와야만이 그게 곧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던 거야. 이렇게 몰랐건 나를 후회해.
그리고 그토록 좋아해.